대기업 노조의 일자리 세습은 현대판 음서제로 누차 비난받은 시대 악습이다. 기아 노조가 끝까지 시정을 거부한 조항은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규정이었다. 노조원과 정규직 자녀라는 이유로 우대해 줘야 한다는 것인데, 명백한 역차별 조항이다.
고용세습의 피해자는 노동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우리 시대 평범한 청년들이다. 가뜩이나 정규직 자리가 없어 일용직, 임시직으로 전전하는 청년들이 지금 사회 곳곳에 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상용직을 구한 청년 취업자는 1년 새 4만명 넘게 줄었고, 임시·일용직 청년은 2만명 넘게 늘었다. 갈수록 좁아진 대기업 일자리는 청년들에게 꿈의 직장일 수밖에 없다. 이런 자리가 노조의 대물림으로 이용된다는 것은 또 다른 청년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사법부도 '단체협약을 통해 일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다수의 취업희망자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노동부가 시정을 요구한 근거 역시 '균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한 헌법과 고용정책 기본법 위반'에 있다. 그런데도 "개정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시정을 거부한 노조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무런 명분이 없는 것이다. 처벌도 500만원 벌금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고 본다. 강력한 징벌조항을 담은 현실적인 법이 있어야 마땅하다. 정부도 이를 반영해 공정채용법(채용절차법 개정안)에 담을 것이라고 하니 정치권도 입법에 협조해야 한다.
귀족노조의 폐해는 지금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고용세습뿐 아니라 현장의 막무가내 채용 압박, 건설판 수억원 뒷돈거래, 깜깜이 회계처리 등 노조의 무법·불법 관행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조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공정의 길이 열린다. 노동개혁도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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