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모두가 열광하는 주인공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분들이 B터뷰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서울=뉴스1) 이비슬 박정호 조현기 기자 = "특수학교 교사를 천사나 봉사자에 비유하는 건 또 다른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교사는 주로 어떤 오해를 받는지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왜 차별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또 한 번 예상을 비껴갔다.
성남혜은학교 교사 전혜진씨(33)는 "특수학교 교사를 교육자가 아닌 봉사자로 받아들이는 건 장애 학생들을 교육 불가 대상으로 바라보는 편견"이라며 "장애 인식을 개선하는 과정에는 특수학교 교사를 향한 인식 개선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혜진씨는 7년 차 특수교사다. 8년 차 언니 전미경(35)씨와 23년차 어머니의 경력까지 포함하면 세 모녀의 특수학교 교사 경력이 40년에 달한다.
특수학교는 지적장애, 지체장애, 자폐성장애, 시각·청각장애 등으로 인해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에게 초·중·고교에 준하는 지식이나 사회 적응 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전국 192개교 중 경기도(38개)에 가장 많고 세종시(1곳)에 가장 적다.
어릴 적 일터에서 마주한 어머니의 모습은 두 딸이 같은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 혜진씨는 "아이들을 이야기할 때 엄마의 눈빛에는 항상 감동이 담겨있었다"며 "엄마가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인상 깊게 보면서 중학생 때부터 '엄마처럼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언니 미경씨 역시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일하는 학교에 봉사활동을 가며 장애 학생에 대한 편견 없이 자랐다"며 "특수학교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족도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아이와 연결고리 찾는 순간 공기부터 달라요"
평생 짝꿍이었던 언니와 동생은 각각 2016년과 2017년 교단에 처음 섰다. 세 모녀가 둘러앉은 식탁은 서로의 교실에서 쌓은 노하우를 풀어놓느라 대화가 마를 틈이 없다. 같은 고생을 해본 사람에게서 받는 공감은 눈빛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했다.
언니 미경씨는 "엄마와는 교과과정이 비슷해서 '이런 수업을 해보니 반응이 좋더라. 너희 반에서도 해봐' 하며 메신저로 수업자료를 공유하기도 한다"며 "단점은 집에서도 업무가 연장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세 모녀의 교실엔 교사 한 명이 아닌 세 명의 노하우가 깃들어 있었다.
특수학교 교사의 하루는 학생들의 마음을 읽는 노력의 연속이다. 교실에선 학생들의 대답이 거의 없다. 아이들이 수업 중 선생님을 바라봐주기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혜진씨는 "저희 반에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학생이 4명인데 수업 중 돌아오는 대답이 거의 없다"며 "흥 많은 성격 덕분에 '특수학교의 꽃'이라 불리는 다운증후군 학생 하나만 대답을 잘 해줘서 참 귀엽다"고 말했다.
학기 초 긴장 탓에 식사를 거부하다 처음 밥을 먹은 학생을 보며 뭉클했던 일, 학교 화장실에서 처음으로 볼일을 본 학생에게 박수쳐준 일. 혜진씨가 담임을 맡은 2학년1반 여섯 명의 아이를 떠올리는 표정과 말투에선 애정 그 이상의 행복이 묻어났다.
자타가 공인하는 열정 교사 혜진씨는 최근 가장 큰돈을 쓴 곳도 '수업 교구'라고 답할 정도로 삶의 초점이 아이들을 향해 맞춰져 있었다.
그는 "책상을 교실 뒤로 전부 밀어두고 바닥에 물걸레질을 매일 두 번씩 한다"며 "우리 아이들이 바닥을 구르고 슬라이딩하며 놀아서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교사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학생과의 교감이 통했을 때다. 혜진씨는 "아무리 장애가 심해도 교사가 '나는 완전히 네 편'이라고 아이가 느끼게끔 하면 연결고리를 찾는 순간이 온다"며 "아이와 제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땐 주변 공기부터 다르다"고 설명했다.
◇"1000번에 안 되면 1만번 하죠"
동생이 바라본 언니 미경씨는 매일 도전하고 발전하는 교사다. 업무 스트레스 해소법을 설명하는 언니의 답변이 많은 배경을 설명했다.
미경씨는 민망한 듯 웃음을 터트리며 "스트레스는 내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 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해 관련 직무 연수를 듣는다"고 말했다. 미경씨는 특수교육 전공으로 대학원 박사과정 진학도 앞두고 있다.
미경씨가 장애 학생들을 이해하는 깊이는 남다르다. 미경씨는 "자폐성 장애 학생은 '시각적 학습자'라는 말이 있어 하루 스케줄을 미리 눈으로 보여주면 쉽게 적응을 한다"며 "한 정서장애 학생은 분노가 많은 편이었는데 표정을 읽어 분노의 전조를 파악하고 음악을 들려주면 누그러졌다"고 말했다.
배변과 같이 개별화 교육이 필요할 경우에는 학부모, 담임 교사, 교장·교감이 모여서 학생을 위한 회의를 한다. 미경씨는 "학부모님 요구는 주로 사회나 국어"라며 "저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수 개념을 가르치려 수학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인내심은 특수학교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미경씨는 "지적 장애 아이 중에서도 휴대전화라는 개념을 한 번에 이해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100번, 1000번의 반복 설명해야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며 "1000번에 안 되면 1만번 하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어 "말도 잘하고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학생이 수시로 손에 침을 뱉고는 제 눈을 바라보며 창문에 바르더라"며 "처음에는 교사를 화나게 하기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란 것을 3살 아이를 키워보며 나중에 깨달았다"고 떠올렸다.
◇ 영화관·카페 예절 배우는 학교
특수교육의 목표는 장애 학생의 자립이다. 장애 학생이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화 교육이 특수학교 교사의 소명이다. 성인이 된 학생이 장애 시설 또는 가정 내에 고립되는 삶은 특수학교 교사가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혜진씨는 "아이들의 (돌발)행동에는 항상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를 사회에서 용인되는 행동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려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장애가 있는 학생은 일반적으로 △특수학교 △특수교육지원센터 △비장애인 학교의 일반학급 △비장애인 학교의 특수학급 중 교육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 전씨 모녀와 같은 특수교사는 임용고시를 거쳐 비장애인 학교의 일반학급을 제외한 세 곳으로 주로 발령받아 교육활동을 한다.
일반 학교와의 차이점 중 하나는 시설이다. 일부 특수학교에는 키즈카페에서 볼 법한 볼풀이나 트램펄린이 갖춰져 있다. 교실에 기저귀를 갈아줄 베드(침대)와 수업 중 학생의 '탈주'를 막기 위한 잠금장치 역시 낯선 풍경이다.
미경씨는 "학생들에게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교내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방법, 좌석을 찾는 방법을 배운다"며 "학교에 노래방, 카페, 텃밭과 같이 작은 사회가 있다"고 말했다.
수업엔 오감을 총동원한다. 덧셈, 뺄셈을 가르칠 때는 추잉검을 자르고 맛보고 직접 잡아 옮기는 체험이 동반된다. 수업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은 모래시계를 엎어두고 설명해야 한다.
혜진씨는 "초등 특수학교는 일반 교과 외에도 이름을 읽고 쓰는 것, 깨끗이 씻는 법,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는 법과 같이 교양을 기르는 과정"이라며 "학생마다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개별적으로 교육을 보완하는 것이 특수교사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2022년 발표한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특수교육대상자 1만3695명 중 27%가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머지 56%가량은 비장애인 학교에 마련된 특수학급에서 공부한다.
전국 190여개 특수학교는 시각·청각·지체장애 등 장애 유형별로도 구분돼 있어 입학을 원하더라도 지역, 정원 수까지 따지면 입학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특수학교 교사와 학교 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교육계에서도 사회화를 위해 비장애인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괴롭힘이나 차별 방지를 위해 분리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매번 맞붙는다.
두 자매가 교육 현장에서 바라본 장애는 '만들어진 것'이었다. 누군가의 장애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면 그 이유는 공생할 방법이 부족했던 탓도 크다. 장애를 유별나게 만든 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서는 지하철을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아닐까.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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