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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읽기] 메타와 멀티의 시대, 공간과 장소의 의미

뉴스1

입력 2023.04.18 17:01

수정 2023.04.18 17:52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 그룹장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 그룹장


(서울=뉴스1) =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채로운 기록을 세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우리를 정신없는 멀티버스(multiverse)의 세계로 안내한다. 멀티버스는 우주가 여러 개라는 의미로 시간과 공간에서 갈래가 나뉘어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 다중우주가 무한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멀티버스의 상상력은 영화 속에서 근사하게 실현되어 주인공 에블린은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며, 관객들이 멀티버스의 개념과 상호 연결성을 탐구하게 한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존재들이 다양한 공간에서 각자의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여러 우주를 넘나드는 기술을 익혀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것은 가히 매력적이다.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예기치 않은 집콕시대를 겪으며 이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없었다.
반면, 이동의 제한으로 인해 디지털 기술을 통한 원격수업, 원격근무, 온라인 쇼핑 등이 확산되어 물리적·전통적 공간인 교실과 학교, 사무실과 회사, 쇼핑몰 등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얻었다. 이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변화이다. 초고속 인터넷망,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디바이스가 갖춰져 있다면 누구나 언제든지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의 유연한 경계가 입증된 것이며, 케언크로스(F. Cairncross)의 책 제목처럼 ‘거리의 소멸(The death of distance)’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은 흔히 사용되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는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Snow Crash’(1992)에서 처음 등장했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meta와 ‘세상 또는 우주’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 세계를 초월한 세상을 뜻한다. 대체로 현실세계와 연결되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가상세계 정도로 쓰인다. SF소설에서 시작되었지만 이후 유사한 상상력이 게임,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이어지다가 디지털 전환,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대중화되었다.

이전의 온라인 플랫폼도 현실을 초월하여 가상공간에서 캐릭터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과거의 온라인 플랫폼과 다른 점은 단순한 초월이기보다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는 것이다. 과거의 가상 세계는 게임과 같은 유희적 기능에 한정되었다면 메타버스는 다양한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 기술을 통해 비대면 업무, 교육, 미디어, 공연, 전시,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경제와 산업, 사회 전 영역으로 파급되고 있다. 이는 인류의 일상과 생활양식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복합적 활동 공간으로 재구조화되며 확장되고 있다.

인간의 삶은 공간과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통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응하면서 공간의 확장과 의미를 탐색해 왔다. 인간은 이동을 통해 세상과 접촉하고 지식을 축적하며 그와 동시에 자신의 본질과 한계를 깨닫기도 한다. 이동의 능력은 신체적인 활동과 다양한 의사소통을 활용하여 경험의 영역을 장소에서 지역으로, 세계로, 우주로(영화 속 에블린은 심지어 다른 우주로까지)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래세대는 메타버스(metaverse)를 넘어 멀티 메타버스(multi-metaverse), 멀티버스(multiverse) 시대에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확장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허용되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작 실생활에서도 특정인에게 공간을 허락할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이 존재한다. 미국의 지리학자 이 푸 투안(Yi-Fu Tuan)은 계단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활동적인 아이들에게는 두 층 사이를 연결하는 초대장으로 작동하지만, 노인에게는 두 층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장의 역할을 한다. 즉, 계단으로 인해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노인들의 이동 능력은 제한적이며, 이들의 공간은 닫히게 된다. 이처럼 실생활에서의 단절된 공간같이 메타버스 세계에 또 다른 장벽과 차별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공간(space)은 자유이며,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개방적인 특성을 지닌다. 공간에 주관적 경험과 개인의 삶, 애착이 스며들 때 그곳은 장소(place)가 된다. 풍부한 가능성을 가지지만 추상적이고 낯선 공간은 그곳에서의 경험과 개인적 삶을 통해 구체적이고 친밀한 장소로 다가온다. 장소가 되는 곳은 고향, 동네, 놀이터 그리고 애정이 깃든 사물이나 사람도 하나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며, 장소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다고 투안(Tuan)은 강조한다.

메타버스, 멀티버스 안에서 개인이 장소를 만들어 가는 방식 역시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메타버스와 멀티버스가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지속적으로 머물면서 활동과 경험, 관계를 통해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클래식 음악이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메타버스를 통해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의미 있는 장소를 발견한다면, 메타버스 세계는 단순히 기능적이고 표류하는 가상의 공간에서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장소로 확장된다.

공간과 장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 요소이며, 대비적이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편안한 안식처를 원하면서도 모험이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찾기도 한다. 그러므로 공간과 장소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공간에 최적의 서비스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메타버스, 멀티버스가 개인과 사회의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로써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 그룹장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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