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튀르키예, 삶 이어질 수 있도록… 도시재건에 힘 보탤 것" [fn이 만난 사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23 18:16

수정 2023.04.23 18:16

이희수 한·튀르키예 친선협회 사무총장에게 듣는다
인터뷰 = 최진숙 논설위원
지진 참사로 남한 면적 규모 지역 피해 입어
피해 가장 심각한 하타이주 중심 구호 활동
주민 정착 컨테이너 주택 360채 건설 목표
6·25 때 튀르키예 병사들이 전쟁 고아 돌봐
"이제 우리가 도울 때" 성금 모금에 많은 호응
고대부터 형성된 역사적·정서적 유대감 커
한·튀르키예 친선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가 경기 의왕 협회사무실에 걸린 튀르키예 국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한·튀르키예 친선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가 경기 의왕 협회사무실에 걸린 튀르키예 국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튀르키예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2월 동남부 11개 주를 강타한 대형 지진으로 지금까지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5만명이 넘는다. 건물은 30만채 가까이 붕괴됐고 집을 잃은 이재민이 200만명에 이른다. 절망과 탄식, 혼돈과 충격은 지금도 여전하다.

비극적인 참사에 세계인들의 온정은 계속되고 있다.
재난 초기부터 대규모 지원단을 급파해 '형제의 나라'의 우애를 보여준 우리나라도 물론이다. 민간 구호활동 중심에 있는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69)를 지난 12일 경기 의왕 한·튀르키예 친선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협회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는 이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중동 전문가로 꼽힌다.

이제는 살아있는 이들을 치유해야 하는 시간, 이 교수는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도시 재건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다. 구호활동은 피해가 가장 심각한 하타이주에 집중돼 있다. 당장 살 곳이 절실한 이들을 위해 컨테이너 임시 주택 360채를 짓는 것이 우선 목표다. 이 교수는 "튀르키예는 우리와 고대사를 공유하는 나라다. 6·25 참전 군인들의 희생과 헌신도 역사적, 정서적 유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2월 지진 참사는 금세기 최악의 재난으로 꼽힌다. 지금 피해 지역은 어떤 상황인가.

▲피해 지역 11개주 규모는 우리나라 남한 면적과 비슷하다. 여진이 계속 있었고 다들 지진이 언제 다시 덮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지금도 탈출 러시를 이루고 있다. 지진 피해 영향권에 있는 사람이 1400만명에 이른다. 전체 인구의 15%에 육박한다. 이 중 800만명 주민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실정이다. 잔해를 제거하는 데만 최소 4~5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지역 전체가 폐허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지 구호 작업은 순조로운 편인가.

▲구호 1단계는 이재민들이 천막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형태였다. 이제 그 단계를 지났다. 최소한 생활이 가능한 컨테이너 임시주택을 짓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현지 당국은 피해가 덜했던 지반을 찾아 새로운 도시를 구축하고자 한다. 입주까지 최소 3년은 걸린다. 이재민들이 임시로 거주할 공간 마련에 국제사회가 함께 지원하고 있다.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도시 재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거기에 힘을 보태려고 한다.

―컨테이너 주택 지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식인가.

▲임시 주택은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 목욕탕 등 위생 시설 공사까지 수반돼야 한다. 학교도 가동돼야 한다. 우리의 경우 지진 진앙지였던 하타이주에 360채 규모의 컨테이너 주택을 짓는 게 우선 목표인데 대략 200억원의 비용이 든다. 국내 30여개 단체가 함께 이 일을 하고 있다. 하타이 주지사와 주택 건립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지금까지 150채가 완료됐다. 컨테이너 앞에 지원 단체의 팻말이 붙어 있다. 하타이주는 이 일대를 '코리안 빌리지(한국 마을)'로 부르고 있다.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마을 운영 전반을 계속 지원해나갈 계획이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고아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1950년 6·25전쟁 때 튀르키예는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우리나라에 보냈다. 1만5000명이 왔다. 주둔 중이던 군인들이 고아원과 학교를 지어 우리 전쟁 고아 600명 정도를 보살핀 일화도 있다. 수원 앙카라 고아원이 그곳이다. 튀르키예 군 사령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 자신들 월급 일부를 떼고 식량을 받으면 조금씩 남겨서 고아들에게 나눠줬다. 세계 전쟁사에 보기 드문 일이다. 거기서 컸던 아이들이 지금 70, 80대 어르신이 됐다. 지진 성금으로 그분들이 1000만 원을 기부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받았던 은혜를 갚아야한다며 뜻을 모으셨는데 그분들로선 굉장히 큰돈이었다.

―튀르키예가 우리 전쟁 고아를 돌봤듯,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현지에 고아원을 짓고 그곳 아이들과 연계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모금 운동과 별개로 추진 중이다. 벌써 고아 한 명을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지겠다고 나선 가족들이 많이 있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월 20만, 30만원씩 지원해 주는 식이다. 한국에 와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겐 국내 연계가족들이 또 다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두세 가족 이상이 한 팀이 돼 고아 한 명을 책임지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문의를 하는 이들이 꽤 있다. 고아뿐 아니라 한국 유학을 원하는 학생들을 돕는 것도 함께 계획하고 있다. 사립대학 총장들과 네트워크를 짜서 학업을 지원하려고 한다.

―지진 성금 모금에 일반인들의 많은 호응이 있었던 걸로 안다.

▲일반인들의 공감대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구호 물품은 산더미처럼 쌓여 물류비를 따로 지원해야 했다. 통장엔 소액을 보낸 이들의 이름도 빼곡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의 손을 잡고 부모가 은행에 가서 함께 송금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가령 1258원을 보내고 그 옆에 25만 원을 보냈는데 이름이 같다. 아이의 성금을 부모가 대신 송금한 경우로 보였다. 이런 사례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 사회의 글로벌 시민의식이 한층 성숙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평소 우리와 튀르키예의 정서적 유대감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극동사 강의를 위해 튀르키예 역사 교과서를 자세히 본 적 있다. 역사 구성이 한국을 특별하게 여길수 있도록 돼있다. 우리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까지 튀르키예와 국경을 맞대고 살았다. 청나라 말기 위구르제국이 중국에 강제 편입된 이후 아시아 끝과 끝에 우리와 튀르키예가 놓이게 됐다. 2000년 역사 중 초기 천년을 서로가 공유하고 있다. 이 고대사를 튀르키예는 비중있게 가르친다. 언어의 뿌리가 같고 역사적 인식을 함께하는, 문화적으로 지구상 가장 친근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 소중한 정서를 우리는 잊고 있었지만 튀르키예 사람들은 국사로 배우며 컸다. 피를 나눈 형제라는 동질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봐야 한다.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힘이 돼줄 수 있는 나라를 우리가 잘 관리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이슬람권은 글로벌 가치기준에서 보면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다. 알카에다나 IS가 저지른 테러나 폭력성, 히잡 강제 착용 같은 문제는 스스로가 풀어야 할 분명한 악습이다. 하지만 적대적 관계의 서구 매체에 의해 지나치게 노출된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알카에다, IS는 이슬람권 57개국이 가입한 이슬람협력기구에 의해 반이슬람 범죄 집단으로 규정된 단체다. 알카에다나 IS는 지지율이 전체 이슬람권의 3%도 안된다. 일탈 집단이 만들어낸 반인륜적 행태가 이슬람으로 동일시되는 일반화는 지나친 과잉이다. 테러 집단은 제거돼야 마땅하지만 서구와 협력하면서 실용적으로 살아가려는 건강한 주류 이슬람 공동체는 끌어안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지진 참사를 통해 우리 정부가 교훈으로 삼을 것이 있다면.

▲재난이 닥치면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가가 가용 가능한 모든 역량을 즉시 동원해야 하는 것이 최고통수권자 책무다. 튀르키예는 이것을 제대로 못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아비규환에 빠졌다. 난개발이 난무했고 내진설계를 못한 것도 책임이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키웠고 민심이 폭발했다.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이번 기회에 다시 복기하면서 튀르키예 참사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좋겠다.

■이희수 사무총장은... 이슬람권 전역 40여년 연구 ‘국내 최고 중동 전문가'

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는 튀르키예 이스탄불대 첫 한국인 박사다. 한국외국어대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이스탄불대 국비유학생 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하면서 지금의 길을 걷게 됐다. 튀르키예를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 이란, 우즈베키스탄,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권 전역에서 40여년 연구에 매진했다. 이슬람 포비아가 만연한 학계 풍토에서 쉽지 않은 길이었다. 이 교수의 결론은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이다.

중동 문명의 근원을 찾아 주류에서 배제된 오리엔트 역사를 복원한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직접 쓰고 번역한 책이 80여권이다. 6년의 시간을 들여 지난해 출간한 '인류본사'는 유럽, 중국에 치우친 세계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해 준 역작으로 호평받았다. 지금은 1000쪽 분량의 '이슬람 통사' 집필을 시작했다. 이슬람의 태동부터 시작해 이슬람 종교가 인류 문명에 기여한 방대한 역사를 한국 학자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한·튀르키예 친선협회는 1999년 튀르키예 서북부 이즈미트 지진 참사 지원을 계기로 결성됐다. 이시형 박사가 초대 회장을 지냈고 박찬숙 전 국회의원에 이어 민남규 자강그룹 회장이 그 뒤를 이었다.
협회 산파역을 맡았던 이 교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무총장이다. 협회는 생존하는 튀르키예 참전용사들과 가족들 후원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중동학회장 겸 한국이슬람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다.

jin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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