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빌라왕’ 피해 심각한 서울 화곡동 가보니
피해자 "이집 날아가면 빈털터리"
신고접수 기관마다 달라 또 좌절
전세 발묶여 이사 물량 없어 침체
피해자 "이집 날아가면 빈털터리"
신고접수 기관마다 달라 또 좌절
전세 발묶여 이사 물량 없어 침체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나선 30대 장모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버지가 물려준 자금으로 계약한 전셋집에 보증보험 가입 사기가 의심돼 센터에서 법률상담을 받고 나오던 참이었다. 장씨는 "생애 첫 전세계약이라 부동산만 믿고 한 거였는데 어안이 벙벙하다"며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문제를 몰랐다' '어머님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서 어렵다' 등의 말로만 회피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하고서야 집주인 '1000채 빌라왕'인걸 알아"
최근 전국 각곳에서 상습 전세사기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전세사기가 휩쓸고 지나간 지역에서는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23일 HUG에 따르면 이른바 '빌라왕' 사건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막심했던 화곡동에는 지난해 9월부터 전세피해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개소 이후 이달 12일까지 4160명이 센터를 이용했고, 법률상담·피해접수·긴급주거 지원상담 등 8524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지난 21일 피해를 증명할 각종 서류를 한아름 안고 센터를 방문한 A씨(50) 역시 보증보험 사기 피해자다. A씨는 지난 2020년 9월 '신축빌라에 당장에 보증보험 드는 게 어려우니 1년 뒤 가입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전세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새 집주인 B씨는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묻는 임차인들의 연락을 피한 채 잠적했다는 게 A씨 설명이다.
A씨는 "집주인 B씨가 임대사업자 등록 뒤 단 석달 만에 빌라 1000개를 사들였다는 것을 이번 사건으로 알게 됐다"며 "같은 빌라에 거주하는 또 다른 피해자들은 마음에 속앓이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전세사기 피해는 사회초년생·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가 주로 거주하는 서울 서남권 지역에서 주로 발생했다. HUG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강서구가 99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금천구 32건, 관악구 27건, 은평구 27건, 구로구 2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일대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20대 사회초년생 C씨는 이번 피해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꿈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C씨는 세들어 살던 원룸 집주인에게 퇴실 통보를 했지만 집주인은 "돈이 없어 새 세입자를 구해야 보증금을 내줄 수 있다"고 답변했다.
C씨는 HUG에 전세사기 피해를 접수하려 했지만 '자체 법률상담을 받은 이들만 신고 접수가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는 또 한 번 좌절했다. 그는 "이미 연차휴가를 수차례 써서 시청 법률상담을 받고 왔는데, 지자체 법률 지원과는 연계가 안되더라"며 "마땅한 신고기관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세에 매매까지 냉각"
전세사기 피해 지역 중개업소는 들어서는 곳마다 썰렁했다. '전세사기 지역'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전세 거래가 뚝 끊기면서 매매물량까지 줄었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화곡동에서 15년 가까이 영업한 태양공인중개사무소 민복기 대표는 "(전세사기가 터진 이후에는) 전세 거래가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전세에 발이 묶이다 보니 나올 사람도 없고, 이사 갈 물량도 없는 데다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하려는 사람조차 없어 전세에 매매 시장까지 함께 침체되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이어 민 대표는 "세입자 전세 만기일이 가까워지면서 '보증금을 못 돌려줘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그야말로 '멘붕' 상태인 집주인들의 문의가 들어온다"며 "정부 정책으로 갭투자를 부추겨놓고는, 이제는 공시가격 하락과 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강화되면서 엉켜버린 실타래가 곧바로 풀리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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