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자연계열 정시모집에서 의·치의예과가 상위 20위를 싹쓸이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서울대 공대는 컴퓨터공학부가 15위를 차지하며 체면을 지켰지만 올해는 '차트 아웃'됐다. 더 큰 문제는 적은 공대에 뒀지만 마음은 의대에 있는 학생들이다. 무소속 민형배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의대 정시 합격자 중 N수생 비율은 78.7%였다. SKY(서울·고려·연세대) 자퇴생 10명 중 8명이 자연계열 학생이라는 점을 봤을 때 이들 대부분이 의대로 진학했을 것이라는 것은 합리적 추측이다.
"반도체가 석유보다 더 중요하다."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의 말이다. 석유를 두고 각국이 헤게모니 싸움을 했던 것처럼 반도체를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전쟁의 핵심 무기는 인재다. 윤석열 대통령은 10년간 15만명의 반도체 인재 양성을 약속했다. 기업들은 채용보장형 계약학과를 개설하며 인재 입도선매에 나섰다. 하지만 계약학과 개설은 인재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 대학교수는 "심도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이공계 학문의 토양이 전반적으로 탄탄해야 한다"면서 "결국 석·박사생이 핵심인데, 서울대조차도 대학원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인재에 대한 처우개선이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붕괴된 공학교육도 톺아봐야 한다. 경쟁국 일본과 대만은 첨단산업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일본은 대학들에 기존 인문·사회계열 학부를 이공계열 학부로 전환하거나 신설을 신청할 시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다. 한국은 어떤가. 수능 과학과목 사이에서 가장 적게 선택하는 과목이 공학의 토대인 물리다. 명문대 공대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고교 물리부터 가르치고 있다. 자연계 최상위권이 '닥치고 의대'가 아니라 공대로 진학하는 게 '기행'이 아닌 시대가 오길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일까.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산업부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