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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다툼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중국 사업을 노골적으로 제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이 전 세계 3위 D램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판매 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리자 미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중국 내 판매 확대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앞둔 민감한 시기를 의도적으로 노려 미국이 대중 견제 동참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4일 외신 및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논의 과정에서 우리 정부측에 '마이크론 제품의 대중 판매가 금지될 경우 한국 기업들이 부족 물량을 공급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이 한미정상회담 직전 이 같은 요구를 한 만큼 회담에서 해당 내용이 주요 의제로 논의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중국 규제 기관인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지난 3월 중국에서 판매 중인 마이크론 제품을 대상으로 사이버보안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중국이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근거로 마이크론 제품의 중국 내 판매를 일시 금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8년에는 마이크론 제품이 대만 UMC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D램·낸드플래시 등 26개 제품을 중국에서 한시적으로 팔지 못하도록 했다. 중국과 홍콩은 지난해 마이크론 전체 매출(308억달러)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큰 시장이어서 판매 금지 조치가 현실화되면 실적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
업계는 이번 조치를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앞서 지난해 12월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제조사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를 포함해 36개 중국 기업을 수출통제 명단에 올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번 보도에 대해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 견제 동참을 요구하는 미국의 거센 압박에 반도체 업계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미국이 중국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 뿐 아니라 판매 전략에도 관여하면서 '선을 넘었다'는 불만들도 감지되고 있다.
대놓고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고심만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 가동을 위해 미국 측으로부터 오는 10월 종료되는 대중국 장비 수출 금지조치 유예 연장을 얻어내는 게 큰 숙제다.
삼성전자 시안1·2공장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월 25만장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공장들은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전체 생산 물량의 40%를 담당한다. SK하이닉스도 우시 1·2라인에서 생산한 D램 제품이 회사 전체 물량의 48%를 차지한다. 미국이 첨단 장비 수출 유예를 중단할 경우 중국 공장 공정 개선은 불가능해 제품 경쟁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요청이 사실이라면 동맹국의 기업을 노골적으로 압박해 중국에 제품을 팔지 말라고 요구하는 전례 없는 일인 셈"이라며 "미·중 패권 다툼에 끼여 한국 기업들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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