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892채 큰손'의 전세사기… 보증금 떼인 임차인 수백명

주원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25 18:26

수정 2023.04.26 09:38

2019년부터 사기 의혹 제기
경찰의 더딘 수사로 피해 커져
세금 체납으로 경매 넘어가면
임대인 "변제 노력" 공문 보내
전세사기 의혹이 제기됐던 악성 임대인 김모씨를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지난 2019년부터 공영 방송에서 전세사기 의혹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피해자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최근에도 김씨 보유 주택에서 피해자가 대거 속출하면서 경찰의 더딘 수사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올해가 돼서야 사기 사실을 알게 된 경우도 있다.

■늦어진 '수사'… 늘어난 '피해자'

2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부동산 법인 김모 대표(44)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해까지 전국 일선서에 산재했던 전세사기 개별 사건들을 모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피해자만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김씨와 관계자 명의의 주택 등기부에 등재됐던 인원만 1000여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는 부동산 법인 2개를 운영하며 갭투자를 통해 지난 2021년 보유한 주택 수만 892채였다고 알려졌다.

3년 전부터 피해가 나왔음에도 수사가 늦어진 원인에 대해 피해자들은 임대인 측의 조직적 대응이 영향을 줬다고 지적한다. 실제 김씨 측이 '변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문을 보내자 피해자들은 경찰 신고를 망설였다고 한다.

김씨 관련 두번째 방송이 보도되기 직전인 지난 2020년 10월 2억원에 전세를 계약해 서울 금천구 빌라에 입주한 최모씨(31)도 뒤늦게 피해를 알게 된 경우다. 계약 당시 최씨는 등기부등본도 확인했고 전세 확정일자도 받아서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 10개월이 지난 2021년 8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임대인 김△△입니다"로 시작한 편지에서 김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임차인에게 내어준 대위변제금을 상환하지 못해 부동산에 가압류가 설정된 상황"이라며 "자금이 막히며 사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씨는 "주변 부동산에 매매광고를 내거나, 경매로 직접 매수도 고려해 주길 바란다"며 "보증금 반환에 있어 임대인의 책임과 협조를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악의적인 사기행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뒤늦게 방송을 찾아보고, 김모씨 피해자가 수백명 있는 단체 카카오톡방에 들어가고나서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단 것을 깨달았다. 현재 최씨가 살던 집은 김씨의 세금 체납으로 압류돼 4차 공매까지 넘어간 상황이다.

같은 빌라에 살고 있는 30대 박모씨는 지난 2021년 1월 계약 후 입주 3개월 만에 다른 부동산의 제보로 전세사기 매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김씨 측 법인이 연결해 준 은행 전세대출을 받고 들어간 터라 문제를 예상하지 못했다. 박씨는 같은해 6월 김씨 측에서 편지가 오자 곧바로 김씨 측 대리인 번호로 연락했다. 대리인은 전세금 1억9000만원에 2000만원을 더한 금액인 2억1000만원에 매수를 권유했다. 박씨가 거절한 뒤 유선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이후로도 "변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는 한차례 더 도착했다. 박씨가 살던 집은 지난 2021년 8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의해 강제관리 대상으로 경매에 넘어갔다가 현재는 압류된 상태다.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들

피해자들은 입주한 집이 근린생활시설이라는 점도 피해자 구제가 늦어지게 된 요인이라고 항변한다.

근린생활시설은 주택가와 인접해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도울 수 있는 시설을 의미한다. 주거용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주거용으로 사용한다면 불법으로 원상회복을 하거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임차인은 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어렵다.
이처럼 김씨 관련 피해자들은 불법 건축물에 살았다는 점 때문에 피해 회복은 물론 경찰 신고도 어려웠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피해자들이 해당 집을 매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전세사기도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케이스가 다양하고 갭투자의 경계선을 따르기에 모호하다"며 "이 경우에도 피해자 적극적으로 변제하려고 노력했다고 고지한 점 등이 혐의 성립을 어렵게 하거나 감형 사유로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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