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토월정통연극 '오셀로' 박호산 "젠더 감수성? 상식이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27 05:00

수정 2023.05.01 13:35

[서울=뉴시스]배우 박호산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연극 '오셀로'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3.04.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배우 박호산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연극 '오셀로'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3.04.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무대와 브라운관을 오가는 배우 박호산은 평소 대본에 메모하는 습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시쳇말로 대본이 까맣다. 빈칸에 지우고 덧붙인 글자가 빼곡하다. 오는 5월 12일 개막하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연극 ‘오셀로’ 이야기다.


‘오셀로’는 예술의전당이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작품으로 오는 5월 12일~6월 4일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예술의전당 장형준 사장은 앞서 “연극 ‘오셀로’는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토월정통연극 시리즈’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오, 질투를 조심하시옵소서.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며 먹이로 삼는 녹색 눈을 한 괴물이니까요(3막3장).

12일 개막을 한달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박호산을 만났다. 그는 “연습 시작하고 한 달 가까이 연출, 배우들끼리 모여앉아 대본 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홉이 일상 용어를 쓴다면 셰익스피어 언어는 다 시와 같아요. 그 문학적인 문어체를 어떻게 대사처럼 들리게 잘 바꿔 배우 입에도 붙고 관객들 귀에도 잘 들릴게 할까? 직역한 대본을 놓고 최적의 단어를 찾고 입으로 뱉어봤다 이상하면 또 바꾸는 작업을 반복했죠. 동시에 방대한 셰익스피어 언어를 간추리는 작업도 병행했죠.”

그러니까 번역과 축약과 무관하게 여전히 셰익스피어다운 언어로 인물들의 감흥과 정서를 전달하는 게 목표다.

17세기 문학작품이 21세기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현대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시대 감성도 신경 쓴 부분이다. 그는 “여성에 대한 묘사가 올드하다. 그 부분을 어떻게 조심스레 바꾸면서도 원작을 훼손하지 않을지 고민하느라 텍스트 작업이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젠더 감수성’을 말하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그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 그냥 (남녀 평등은) 상식이다”라고 응수했다.

작업 과정이 다소 지난하게 들린다고 하자 그는 “이것이야말로 연극하는 재미”라고 답했다. “길고 지난한 과정을 할 때 팀워크가 좋으면 정말 재밌습니다. 물론 자유롭게 낸 의견을 정리하는 조연출은 힘들겠지만(웃음)”

공연 하는 재미?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오셀로’는 베네치아의 무어인 용병 출신 장군 오셀로가 희대의 악인 이아고에게 속아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질투하다 결국 살해한다는 이야기다. 요즘으로 따지면 유럽으로 이주한 ‘흙수저’ 출신 유색인종이 최고의 무관 자리에 오르고, 승진에 실패한 소시오패스 성향의 부하가 온갖 계략을 꾸며 여럿 사람의 인생을 파멸한다는 내용이다.

오셀로를 오늘날 무대로 소환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오셀로 캐릭터의 개연성이다. 그는 오셀로가 너무 쉽게 이아고의 말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봤다.

“오셀로의 대사 중 자화자찬이 많아요. 캐릭터의 무게감이 떨어져서 대사를 많이 줄여 말을 아끼는 사람으로 만들었죠. 또 이방인이 그렇게 높은 지위에 올랐으면 남을 쉽게 믿지 않을 것이라고 봤어요. 같은 대사라도 말의 뉘앙스를 달리해 늘 경계하고 속이기 어려운 인물로 잡았어요. 그래야 오셀로를 속이는 이아고의 캐릭터도 더 강해질 것이고, 오셀로의 낙폭 역시 더 클 것이라고 봅니다.”

오셀로에게 아내 데스데모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는 “첫사랑 같은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이 난생 처음 정서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거죠. 질투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라 이 낯선 감정들에 미숙했을 것 같아요.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지 않고, 그저 내 감정을 따라가다 파멸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오셀로는 맹목적으로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마와 같습니다. 마냥 고결하지도, 미련하지도 않은 오셀로의 입체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어요."

4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소환되는 고전의 매력에 대해서는 “인간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봤다. “세익스피어는 늘 인간을 다루죠. 어떻게 보면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인물의 정서나 감정이 중요하죠. 스토리를 통해 주제나 교훈을 드러내기보다 인물의 정서나 느낌을 (현대의 관객들과) 공유하는 게 더 재미있고 감동적일 것 같습니다.”

공연하는 즐거움도 전했다. 흔히 영화는 감독, 드라마는 작가 그리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한다.

박호산은 공연을 하는 이유로 "작품 전체를 만지는 힘? 안는 힘, 그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객석에서 느껴지는, 마치 지휘자와 같이 공연장의 공기를 만지는 힘이 너무 좋습니다. 조정하는 게 아니고요. 무대와 객석을 오가는 공기의 흐름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분업화가 잘된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자신이 맡은 캐릭터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보는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연극을 하는 재미다. 그는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자체가 놀이입니다."

한편 오셀로 역에는 동갑내기 배우 박호산과 유태웅이 캐스팅됐다. 오셀로의 기수장이자 질투의 화신 이아고 역은 ‘양손프로젝트’로 활동 중인 손상규가 맡는다.


귀족 브라반티오의 딸로 오셀로와 사랑에 빠진 데스데모나 역에는 이설, 이아고의 부인 에밀리아 역에는 이자람, 원로원 의원이자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인 브라반티오 역은 이호재가 맡는다.

여기에 실험적이고 세련된 연출로 동시대와 호흡하는 박정희가 연출을 맡는다.
시노그래퍼(무대미술가) 여신동과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의상 디자이너 김환 등 젊은 창작진들이 합세했다.

[서울=뉴시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손상규, 이설, 이호재, 이자람.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3.03.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손상규, 이설, 이호재, 이자람.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3.03.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