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풍성한 경제 보따리를 챙겼다. 수십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유치부터 양국 간 글로벌 원전시장 동반진출 등 실질적인 이득도 많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한 알맹이가 빠져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미국의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반도체과학법 이야기다.
공동성명을 들여다보면 두 법안에 대한 인식과 해법이 원론 수준에 그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가령 양 정상이 두 법안이 한국 기업에 미칠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말은 무슨 노력을 했다는 뜻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미국 내 기업투자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를 하겠다는 문구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IRA는 북미 내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을 제대로 지급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미국에 공급할 차를 주로 국내에서 조립해온 한국 차업계로선 애초부터 보조금 지급요건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에서 명백한 '독소조항'이다. 현대차가 미국 현지에 건설 중인 전기차 공장도 내년 하반기나 돼야 양산이 가능하니 보조금을 받는 건 언감생심이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요건으로 영업기밀인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등의 자료 제출과 초과이익 환수 등을 제시한 반도체법도 명백한 독소조항이다. 현지에 공장을 짓도록 유인해 놓고 경영상 비상식적인 조건을 내건 미국에 반도체업계는 말도 못 꺼내고 있다.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에 대한 1년 유예조치가 오는 10월로 끝나지만 그다음이 어떻게 될지 기약할 수 없다.
물론 미국이 두 법안에 대해 앞으로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를 남긴 건 적잖은 성과다. 그러나 IRA와 반도체법의 쟁점이 이번 양국 회담에서 즉각 해소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이번 결과물 사이엔 엄청난 괴리감이 있다. 정치는 말로 하지만, 사업은 계약서로 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쟁점 해소는커녕 앞으로 미국이 또 다른 독소조항을 제시할까 전전긍긍이다. 정상회담은 끝났지만 두 법안 협상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양국 실무협의에서 확실한 독소조항에 관한 해법과 추가 제재 방지라는 확약서를 받아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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