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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전기·가스료 묶은 탓에 꺾인 물가, 안심하긴 일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02 18:01

수정 2023.05.02 18:01

근원물가는 아직도 안 꺾여
고유가 고환율 곳곳에 복병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14개월 만에 3%대에 머물렀다. 물가 상승률이 3%대로 둔화한 것은 지난해 2월(3.7%) 이후 처음이다. 사진은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14개월 만에 3%대에 머물렀다. 물가 상승률이 3%대로 둔화한 것은 지난해 2월(3.7%) 이후 처음이다. 사진은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개월 만에 3%대로 주춤했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80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3.7% 상승에 그쳤다. 지난 1월만 해도 5%대에서 꿈쩍 않던 소비자물가는 2월 들어 4%대로 꺾인 뒤 지난달 3%대까지 내려온 것이다. 암울한 경제여건 속에서 그나마 고무적인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 변수로 끝없이 올랐던 석유류 가격이 안정세를 보인 것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줬다.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16.4% 내렸는데 이는 3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이었다. 하지만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석유류·농산물 제외)는 좀처럼 안정세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근원물가는 지난달에도 4.6%로 올라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외식, 개인서비스 가격이 6%, 7%대로 상승폭을 키우며 근원물가를 끌어올렸다. 물가안정을 기대하긴 아직 이르다고 봐야 한다.

물가를 다시 들썩이게 할 악재는 곳곳에 잠복해 있다.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는 이달부터 하루 116만배럴 규모의 추가 감산을 단행키로 지난달 기습적으로 결정했다. OPEC 플러스의 감산은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둔화, 가격하락 방어 차원에서 나왔다. 국제유가는 감산 직후 급등했다가 하락과 상승을 오가며 불안한 장세를 펼치고 있다. 해외 전문가들 전망대로 하반기 다시 배럴당 100달러로 치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기·가스 요금 인상도 계속 누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료 상승폭은 전월보다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20%를 크게 웃돌아 물가를 압박했다. 정부와 여당이 물가를 의식해 2·4분기 전기·가스료를 동결하고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 와중에 지난해 임원 연봉을 전년대비 30%나 올린 가스공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부채 규모가 52조원에 달했다. 한전도 마찬가지다. 가스공사나 한전은 전 국민에게 지난겨울 난방비 폭탄을 안기며 고통을 줬으면서도 요금인상을 최소화할 자구책을 아직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요금을 올리기 전에 자구노력이 먼저라며 한전 사장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에너지 요금인상은 언제까지 미룰 수 없는 문제다. 원가보다 값싼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천문학적 규모로 적자가 쌓인 에너지 공기업을 방치하면 국민이 고스란히 그 빚을 감당해야 한다.

무역적자가 쌓이면서 주요국 통화 중 나 홀로 약세를 보이는 원화 값도 물가불안을 부추긴다. 치솟는 환율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전체 물가를 요동치게 할 수 있다.
정부와 당국은 상고하저 낙관론에 매달리지 말고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물가를 자극할 포퓰리즘 선심정책도 서둘러 정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물가 시대 합리적 소비문화도 정착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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