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 "다자주의 회복" "기후변화 대응" 공감대
이 총재는 지금까지 통화나 재정에 과하게 의존했던 경제 정책을 지적하고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통화 긴축과 관련해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자본유출 리스크를 겪을 수 있다면서도 그 정도는 지난해에 비해 덜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창용, ADB 총회서 "고금리 오래갈 수 있다"
이 총재는 3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56차 ADB 연차총회에서 우리나라 통화정책, 아시아 국가들의 거시경제상황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이 총재는 아사카와 마사츠구 ADB 총재와 인도네시아, 인도 중앙은행 총재 등이 참여한 '거버너 세미나'에서 "아시아권 경제는 타 지역에 비해 전반적으로 잘하고 있다. 아시아가는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다만 추가 통화 긴축에 따른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 및 자본유출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선진국의 긴축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만큼 그 위험성은 지난해에 비해 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이날 우리나라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매파적' 발언을 이어갔다. 이 총재는 "시장 기대보다 고금리 상황이 오래갈 수 있다"라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월 한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7%로 떨어진 것은 좋은 뉴스지만 근원물가상승률은 여전히 경직적"이라며 "통화정책 전환(피벗)을 말하기는 시기상조"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총재는 미국 달러화 강세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이어질 수 있는데, 아시아 국가들이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거버너 세미나에서 이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은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에 의존해서 경제를 개혁했는데 저희는 통화나 재정정책을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성장률 부분은 기대해선 안 된다"라며 "선진국의 사례에서 구조적 경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거버너 세미나에서는 지정학적 분절에 따른 공급측면의 제약 등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 정교화'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고금리 장기화에 대비해 중소기업 등 취약부문을 1차적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장기적 차원에서 부채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인도에서는 인프라, 투자, 개혁, 포용성 등 '4I(Infrastructure, Investment, Innovation, Inclusiveness)' 정책을 제안했다.
■아시아 국가들 "다자주의 회복" 공감대
ADB 총회의 둘째날에도 다자주의 회복과 기후변화 대응이 핵심 화두였다.
이날 개회식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한국 정부는 포용, 신뢰, 호혜의 3대 협력원칙을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개발 협력에 적극 기여하겠다"고 축사를 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협력적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적극 동참하고 역내 회원들과 성장 경험을 공유하며 특히 기후변화, 디지털 격차 등의 분야에서 적극적인 기여 외교를 수행하겠다"라며 국가 간 협력과 연대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사카와 ADB 총재는 세미나에서 "아시아 산업화 과정은 엄청났다.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 강국 지역이 됐다"라며 "이런 대가로 아시아 탄소 배출량이 전세계 지역 5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기후 스마트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사카와 총재는 기후와 경제성장을 연계하기 위한 4개의 축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기후친화적 상품에 대한 무역과 투자 증진 △녹색기업 양성을 위한 적절한 규제, 인센티브 도입 △역내 무역협정에 기후변화 관련 조항 반영 △그린 이코노미 협정, 탄소가격 책정 메커니즘 등 혁신적 협력이다.
다자주의의 강점이 국가들의 협력과 연계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경제개발 노하우에 대한 공유도 이뤄졌다. 이창용 총재는 "한국의 소득이 낮았을 때 다른 국가에 비해 부패가 덜했고, 국가가 자본 유출을 엄격하게 관리했다"라며 "이렇게 쌓인 저축분이 인프라 개발로 이어졌고 ADB 등 다자주의 기관을 지원을 받아서 현명하게 자금을 운용할 수 있었다. 교육의 질과 공무원의 유능함도 그 비결"이라고 말했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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