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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만에 즉위한 英 찰스 3세, 불신과 분열 넘어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07 15:58

수정 2023.05.07 16:06

英 찰스 3세, 파격적인 대관식으로 이미지 개선 노려
왕실 반대 여론 갈수록 커져, 왕실 내 불화도 여전히 진행중
영연방 국가들의 불만도 잠재워야, 영국 분열 가능성 여전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있는 찰스 3세(왼쪽)와 1953년 6월 2일에 대관식을 치른 엘리자베스 2세.AFP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있는 찰스 3세(왼쪽)와 1953년 6월 2일에 대관식을 치른 엘리자베스 2세.AF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왕위 계승을 기다렸던 찰스 3세가 6일(현지시간) 마침내 대관식을 치르고 영국 윈저 왕조의 5대 왕에 오르는 절차를 마쳤다. 65년을 기다렸던 찰스 3세는 즉위하자마자 군주제 반대 여론, 왕실의 불화, 영국 연방(Commonwealth·영연방)의 분열 등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찰스 3세(왼쪽 첫번째)가 대관식을 치르는 가운데 영국의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인 페니 모돈트(50) 추밀원 의장이 보검을 들고 있다.AP뉴시스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찰스 3세(왼쪽 첫번째)가 대관식을 치르는 가운데 영국의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인 페니 모돈트(50) 추밀원 의장이 보검을 들고 있다.AP뉴시스
■파격적인 대관식으로 이미지 제고
영국 런던에서 6일 오전에 진행된 대관식은 선왕이자 모친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비하면 짧고 작은 행사였다. 영국 왕실은 1953년 행사에서 국내외 약 8000명을 초대했지만 이번에는 약 2300명만 초대했다. 한국의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미국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 등 203개 국가 및 단체 대표들이 대관식에 참석했다.
다만 행사에 투입된 세금은 최소 1억파운드(약 1668억원)로 추정되어 저렴한 행사는 아니다.

찰스 3세는 영국 국교회 방식으로 진행되는 대관식 가운데 즉위 선서를 통해 "모든 믿음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지 매체들은 해당 발언이 선왕의 즉위 선서와 다른 점이라며 종교적 다양성을 언급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행사에는 영국 왕실 역사상 처음으로 불교,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대관식에 참석해 찰스 3세에게 비종교적인 대관식 물품을 전달했다. 아울러 식장에서 영어와 함께 웨일스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아일랜드어로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여성 사제가 처음으로 성경을 낭독하고 흑인 여성 상원 의원, 카리브해 출신 여성 남작 등이 대관식에서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변화는 왕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으로 추정된다.

미 CNN방송이 영국 여론조사 기업 사반타와 함께 5일 발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영국 성인 2093명 가운데 36%가 왕실 가족에 대한 의견이 10년 전보다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답했다. 미 정치매체 더힐은 다국적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를 인용해 엘리자베스 2세가 말년에도 70% 이상 지지율을 유지했지만, 찰스 3세는 지난해 9월 왕위 승계 이후 초기 3개월간 지지율이 55%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왼쪽 다섯번째)과 윌리엄 왕세자가 나란히 선 가운데 커밀라 왕비(오른쪽 첫번째)와 찰스 3세가 나란히 관을 쓰고 국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왼쪽 다섯번째)과 윌리엄 왕세자가 나란히 선 가운데 커밀라 왕비(오른쪽 첫번째)와 찰스 3세가 나란히 관을 쓰고 국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복잡한 왕실, 어색한 재회
미 뉴욕타임스(NYT)는 찰스 3세가 수십 년 동안 왕세자에 머물렀으나 모친을 비롯해 주변인이 찰스 3세보다 더 유명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대관식 당일 찰스 3세의 장남인 윌리엄 왕세자와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 부부는 세 자녀와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 특히 미들턴은 이날 작고한 시어머니 다이애나 비가 생전 썼던 진주·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하고 나왔다.

수십 년 동안 왕실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커밀라 왕비도 이날 공식적으로 왕비의 관을 썼다. 찰스 3세는 1981년에 다이애나 비와 결혼했으나 6년이 지나지 않아 당시 남편이 있었던 커밀라와 불륜을 시작했다. 이후 1996년에 다이애나 비와 이혼했다. 커밀라는 2005년에 찰스 3세와 결혼했지만 왕세자빈 칭호를 받지 못했고 남편이 왕위에 오른 다음에야 공식적으로 왕비 칭호를 받았다.

앞서 왕실의 인종 차별을 주장하며 왕실과 결별한 뒤 2020년 미 캘리포니아로 떠났던 찰스 3세의 차남 해리 왕자는 이번 대관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인종 차별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부인 메건 마클과 아들 아치, 딸 릴리벳은 아치의 생일이 대관식 날짜와 같다는 이유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해리 왕자는 올해 1월 자서전 '스페어'를 출간하면서 아버지 및 형과 사이가 더 나빠졌다. 해리 왕자는 대관식에서 윌리엄 왕세자보다 두 줄 뒤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찰스 3세의 동생인 앤드루 왕자도 대관식에 등장했으나 대중의 야유를 받았다.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으로 인해 2020년 이후 왕실의 모든 직위에서 물러났다. 해리와 앤드루는 이번 행사에서 어떠한 역할도 맡지 못했으며 대관식 말미에 왕실 가족이 버킹엄 궁전에서 함께 인사하는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찰스 3세의 대관식을 따르는 군인들이 영국 연방(Commonwealth·영연방) 회원국의 국기를 메고 행진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찰스 3세의 대관식을 따르는 군인들이 영국 연방(Commonwealth·영연방) 회원국의 국기를 메고 행진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분열된 왕국 다시 합해야
찰스 3세는 집안 문제뿐 아니라 바깥식구도 챙겨야 한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파푸아뉴기니, 자메이카, 앤티가 바부다, 바하마, 벨리즈 등 영연방 내 12개 국가의 원주민 지도자들은 지난 4일 찰스 3세에게 서한을 보내 식민 지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왕실 재산을 이용한 배상을 촉구했다.

1931년 출범한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 국왕을 군주로 인정하는 14개 영연방 왕국을 포함해 총 56개국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해당 모임은 대영제국을 대체하는 조직으로 출범 당시에는 영국과 영국 식민지들의 주종 관계가 가입 조건이었으나, 1949년부터 해당 조항이 폐지되어 현대적인 국제 조직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개혁을 이끌고 조직을 유지한 장본인이 바로 엘리자베스 2세였다. 영연방 국가들은 갈수록 영국의 지원이 줄어들자 계속해서 영연방 탈퇴를 주장했으나 엘리자베스 2세의 외교적 노력 덕분에 이탈을 미뤘다.

외신들은 영연방 국가들이 엘리자베스 2세와 달리 찰스 3세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9월 앤티가 바부다는 3년 안에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 전환을 위한 국민투표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 다른 영연방 왕국인 자메이카도 왕정 폐지를 요구했다. 호주 중앙은행은 지난 2월 발표에서 5호주달러에 인쇄된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을 지우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호주 지폐에 인쇄된 영국 왕실 인물은 모두 사라지게 됐다.

한편 영국 내 스코틀랜드는 집권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찰스 3세의 즉위와 상관없이 독립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영국령 북아일랜드 지방에서도 아일랜드와 통일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찰스 3세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질 전망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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