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맞아 급격히 성장했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산업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주요 업체 구독자는 줄어들고 있으며 기업들은 신규 고객 유치보다는 비용을 줄이고 요금을 높여 수익성 확보에 나섰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인 물가상승이 계속되는 한 바뀌기 어려울 전망이며 결국 스트리밍 업체들 또한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대형 OTT 구독자 기대 이하
미국 월트디즈니는 10일(현지시간) 1·4분기 실적발표에서 OTT 사업부인 디즈니플러스의 성적을 공개했다. 지난해 세계 OTT 시장 점유율 3위였던 디즈니플러스의 구독자는 3월 말 기준 1억5780만명을 기록, 전 분기 대비 400만명(약 2%) 줄었다. 이는 시장 전망치(1억6317만명)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숫자다. 북미지역에서만 60만명이 감소했다. 디즈니플러스의 구독자는 지난해 4·4분기에도 약 240만명 줄었으며 지난 분기까지 2개 분기 연속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업계 1위인 넷플릭스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1·4분기 신규 구독자가 175만명이라고 밝혔다. 해당 숫자 역시 시장 전망치(206만명)보다 낮은 숫자다. 총 유료 구독자 숫자는 2억3250만명이다.
미 경제매체 CNBC는 현재 공개된 자료를 인용해 같은 기간 업계 7위인 파라마운트플러스의 구독자가 410만명 늘었고 더 작은 OTT인 피콕의 구독자가 200만명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규모가 작은 OTT의 구독자가 늘기는 했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파라마운플러스를 운영하는 파라마운트글로벌의 경우 구독자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달 초 배당금을 5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고 발표하자 주가가 하루만에 28% 폭락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국제 시장조사업체인 스태티스타는 지난달 통계에서 OTT 기업들의 매출 증가율이 갈수록 떨어진다고 예측했다. 증가율은 팬데믹으로 비대면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2020년에 연 34.6%에 달했으나 지난해 10.1%까지 추락했고, 올해부터 최소 4년간 계속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볼거리 줄고 더 비싸져
OTT 업체들은 신규 구독자가 뜻대로 늘지 않자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고 요금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디즈니의 밥 아이거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실적 발표에서 디즈니플러스의 콘텐츠 일부를 제거해 비용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는 동시에 앞으로 신규 콘텐츠 제작에 쓰는 돈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아이거는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의 양과 비용을 합리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즈니는 대신 다른 자회사인 훌루의 콘텐츠를 디즈니플러스로 가져올 계획이다. 또한 아이거는 유럽에서 올해 말부터 도입되는 광고 포함 요금제를 언급하며 앞으로 광고가 없는 요금제의 구독료를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우리가 제공하는 콘텐츠의 가치를 보다 적절하게 반영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디즈니플러스는 이미 1·4분기부터 수익성을 최우선 과제로 조정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서비스하는 '디즈니플러스 핫스타'의 경우 구독 유도용 마케팅을 크게 축소했으며 인도의 구독자는 8% 감소했다. 그러나 인도 구독자 가운데는 초저가 요금제를 쓰는 비중이 많았고 회사는 구독자를 잃더라도 마케팅 비용을 아껴야한다고 판단했다. 디즈니의 1·4분기 스트리밍사업부 손실은 6억5900만달러(약 8751억원)로 지난해 4·4분기(11억달러)보다 줄었으며 시장 전망치(8억4100만달러 손실) 보다 양호했다.
넷플릭스는 이미 2021년부터 구독료를 인상했고 지난해에는 전반적인 지출 축소를 선언했다. 올해는 계정 공유를 금지한다고 밝혀 국제적인 반발을 샀다. 파라마운트플러스 또한 지난 2월 발표에서 구독료를 올리겠다고 밝혔다. CNBC는 수익성을 우선하는 OTT 업체들의 행보를 두고 2019년 디즈니플러스 출범 이후 시작된 OTT들의 구독자 확보 전쟁이 마침내 끝났다고 지적했다.
물가상승에 구독부터 줄여
OTT 구독자가 좀처럼 늘지 않는 이유는 물가상승으로 지갑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BBC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의 OTT 서비스 구독자 숫자는 3050만명에서 2850만명으로 약 200만명 줄었다. BBC는 약 40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물가상승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다국적 시장조사업체 칸타에서 국제 엔터테인먼트 수요를 담당하는 도미닉 수네보 국장은 "영국인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높은 물가로 인해 재정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또한 미 구독 서비스 분석업체 안테나를 인용해 미국에서 지난해 넷플릭스와 훌루, HBO 맥스 등 OTT 구독 취소가 전년 대비 49% 증가했다고 전했다. 칸타의 수네보는 "특히 같은 가구에서 3개 이상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계에서 구독 취소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선진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구독 피로'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달 다국적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의 설문조사를 인용해 미 소비자들이 너무 많은 구독 서비스로 피로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설문에 따르면 미 소비자들은 구독 기반 영상서비스에 매달 평균 48달러(약 6만3720원)를 지불하고 있으며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돈을 너무 많이 낸다’고 답했다. 동시에 응답자의 3분의 1은 구독중인 서비스를 해지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딜로이트의 케빈 웨스트콧 부사장은 미 소비자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일반적으로 4개의 영상 구독 서비스를 유지했지만 최근 물가상승으로 생활비가 올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설문 응답자의 47%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최소 1개의 엔터테인먼트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거나 저렴한 요금제로 바꿨다고 답변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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