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강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원자력 발전소에 이 내용이 0.1초라도 빠르게 통보된다면 원전 보호와 인명 사고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유희동 기상청장)
"2016년 리히터 규모 5.8의 경주 지진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지진에 대한 대비를 많이 해왔는데 (기상청과 협력을 강화하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부분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14일 기상청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환경과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들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원전을 만들겠다는데 뜻을 모았다.
기상청은 원전에 설치·운영 중인 지진계 기록을 받아 수도권과 원전 운영지역 5곳의 지진 사고를 '집중 감시'한다. 원안위는 원전 내 자체 지진 감시·분석은 물론 기상청 '특별관리'를 통해 강한 지진이나 주변 해역의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한 안전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정책은 기상청이 2027년까지 추진하기로 한 '고밀도 국가 지진관측망 확충 계획'과 정부의 '에너지시설 내진 안전 종합대책'에 따른 것이다. 기상청과 원안위는 지난 12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한수원 고리 원자력 본부)에서 '원전 지진관측망 합동 현장점검'을 벌이며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이 계획은 특히 양산단층 위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으로 꼽히는 부산·경남권 안전을 위한 것이다.
고리원전에는 총 6대의 지진계가 설치돼 있다. 원자로 건물 기초부를 비롯해 비상전력을 공급하는 디젤건물 앞, 원자로 높이인 지상 150.4m 등에 설치돼 지진동을 감지한다.
통상 땅속 최대 100m 깊이를 뚫어 설치하는 지진계와는 목적이 다르다. 기상청 지진계가 지각 이동에 따른 지진동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면 원전 내 지진계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원자로가 받게 될 지반 가속도 측정이 우선이다. 이날 언론에 공개된 3번 지진계(YE-3276C)는 원전과 같은 암반에 설치돼 진동을 감지한다.
원전 안팎에 설치된 지진계는 그간 기상청 지진계와 별개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최근 동해와 괴산, 남해 등에서 연속 지진이 발생하며 국민 불안이 커지자 기상청은 한수원을 비롯해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운영 중인 지진 관측망 220개를 기상청 지진 관측망에 편입시키기로 했다.
기상청은 여기에 현재 390개소인 지진 관측망을 2027년까지 184개 추가 설치하는 등 총 851개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기상청은 이를 통해 지진 탐지 시간을 3.4초에서 1.4초로 2초가량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진 관측망을 184개 추가 설치하고, 한수원과 한국전력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운영 중인 지진 관측망 220개를 기상청 지진 관측망에 편입시킨다. 이렇게 해서 2027년까지 지진 관측망을 851개소로 확대한다는 게 기상청 계획이다.
김명수 기상청 지진화산국 사무관은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지진관측망 조밀도가 현행 16㎞에서 7.2㎞까지 조밀해지면 수도권과 원전 지역의 지진 탐지·통보 시각을 기존 3.4초에서 최단 1.4초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초 빠른 지진 정보 전달이 원전에 어떤 의미일까. 모상영 고리원전 제1발전소장은 "지진 가속도 0.3g, 즉 규모 7.0 지진이 원전을 덮칠 경우 안전 정지에 필요한 기기들이 손상될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1초라도 빨리 제어봉을 낙하시켜서 원자로를 안전하게 정지하는 게 발전소 안전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원자로는 핵분열 연쇄반응을 제어하는 게 관건이기 때문에 타이밍을 놓쳐서 더 큰 사고로 확대되는 걸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빠른 지진 통보는 지진에 따른 건물 붕괴나 지진해일에 대응하는 데도 중요하다. 고리원전은 냉각수 활용의 효율화를 위해 바닷가와 가깝게 맞닿아 있다. 고리원전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해안 방벽'을 설치했다. 이 방벽의 출입문은 10m 높이의 지진해일에 대비하기 위해 높이 약 5m, 두께 1.8m의 27톤짜리 철문으로 제작돼 유압으로 열고 닫는데 3~4분 이상이 소요된다.
지진 발생 뒤 몇 분내 지진해일이 들이닥치는 상황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지진 정보의 빠른 전파는 원전은 대통령실, 헌법재판소, 국회의사당과 함께 '가급 국가중요시설'인 원전 보호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한수원 등이 운영하던 지진계 중 일부는 국가 지진관측망에 활용돼 온 기상청 지진계와 달리 국가 공인 검정을 받지 않았다. 한수원 관계자는 "올해 내 주요 지진계의 공인 검정이 이뤄지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닷가와 맞닿아 있는 원전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는 안전할까. 한수원 측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정택민 한수원 부장은 "해당 지역은 앞으로 100년간 해수면이 60㎝쯤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국내 모든 원전이 해수면보다 5m 이상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10m 지진해일을 막을 수 있도록 조치한 상태"라고 말했다. 한수원 측이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이날 유 청장과 유 위원장은 주제어실을 방문해 지진경보 체계를 테스트했다. 주제어실에 지진 경보 경광등을 2개 설치했는데 강진 발생시 주황색 경광등과 빨간색 경광등이 소리를 내면서 울리게 된다.
내진설계는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지금껏 가동해 온 원전의 내진설계는 최대 지반가속도 0.2g, 즉 규모 6.5 지진에도 안전할 수 있도록 했다면 2019년 준공한 신고리 3·4호기부터는 0.3g, 규모 7.0 수준 지진에도 안전하게끔 했다는 게 한수원 측 설명이다.
원전은 운전 과정에서 지진이 감지되면 경보발생-수동 정지-자동 정지 등이 이뤄진다. 지반가속도 0.01g, 규모 약 4.0 이상 지진이 원전 주변에서 발생하면 경보가 발령되고, 0.1g(규모 5.5 지진) 이상이면 원자로가 수동 정지되며, 0.18g(규모 6.4 지진) 이상이면 원자로가 자동 정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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