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부담 우려한 '요금의 정치화' 후폭풍 만만찮아
전력수요흐름 감안할 때 추가 인상 쉽지 않을 듯
전기·가스요금 연료비 연동제, 정책으로 정착돼야
전력수요흐름 감안할 때 추가 인상 쉽지 않을 듯
전기·가스요금 연료비 연동제, 정책으로 정착돼야
[파이낸셜뉴스] 전기·가스요금이 16일부터 오른다. 3월 하순께 결정될 것으로 보였던 2·4분기 요금이 거의 한달 보름이 지난 후에야 확정됐다. 최종결정은 에너지산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물가당국인 기획재정부 간 협의가 아닌 당정협의회에서 이뤄졌다.
물가급등에 따른 서민 부담 등을 우려, 정치 논리가 사실상 시장가격을 결정하면서 여러 부분에서 부작용이 파생될 것으로 보인다. '요금의 정치화'는 전기·가스요금 결정과정에서 예견됐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최종 판단할 부분이다"고 언급하고서부터다.
전력공급 공공기관인 한국전력은 지난해 32조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냈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에다 물가급등 등을 우려해 전기요금인상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한전은 발전자회사, 민간발전회사 등에서 전기를 사서 가정, 기업에 공급하는 구조다. 전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았다. 이에따라 한전이 지난 2021년부터 2년 동안 쌓아온 적자는 38조5000억원에 달한다. 올 1·4분기에도 6조2000억원의 적자가 누적됐다. 한국가스공사 또한 지난해 말 8조6000억원이었던 미수금이 올 1·4분기에만 3조원이 더 늘었다.
산업부 등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51.6원 올려야 2025~2026년 누적 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 가스요금도 MJ(메가줄) 당 10.4원 인상해야 한다. 국회에도 이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지난 1·4분기 13.1원 오르는 데 그쳤다. 이날 8원 올렸다. 올해 전체 인상폭의 절반을 못 채웠다. 에어컨 전력 수요가 많아지는 3·4분기, 난방비 부담이 커지는 4·4분기, 총선이 있는 내년 상반기는 전기요금을 올리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사실상 이날 전기요금 인상 이후 추가 인상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식시장도 이같은 예측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이날 요금인상안 발표직전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기요금이 kWh당 7원 인상된다고 하면 (한전의) 2·4분기 영업손익은 1조2000억원 손실로 적자 지속을 전망한다"고 밝혔다.
전기·가스요금 결정에 정치논리가 과도하게 개입되면서 전력산업계 전반이 동반 부실해 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선 한전은 최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안을 내놓으면서 발전소와 송·배전망 같은 일부 전력시설의 건설시기를 늦추거나 건설규모를 축소해 1조30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했다. 당장 돈이 없어 투자를 줄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전력망은 핵심 사회간접자본(SOC)라는 점이다. 한전은 올해부터 2036년까지 송배전망에 56조원을 투자해야 하지만 사실상 올스톱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의 투자를 멈추게 되면 전력업계 관련 중소·중견기업도 동반 부실해 질 가능성이 높다.
전력망이 불안해지면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정유 등 국내 대표 산업들의 경쟁력 약화도 우려된다. 우리나라 대표산업들의 특히 전력 소비가 많다. 산업계 관계자는 "경기 용인에 새로 짓는 반도체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려면 원전 4기에 해당하는 규모의 생산설비와 송배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기, 가스요금 인상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다만, 정치적 요인을 감안해도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이 많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시적으로 요금인상을 할 수 없는 정치적 요인도 있겠지만 중장기적 로드맵을 갖고 공감대를 형성해 완만하게 인상해야 한다"며 "공기업 부채를 정부예산으로 보정해 주는 논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기, 가스요금에 대한 정치 개입을 시스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가스 요금에 대한 연료비 연동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며 "국제 원자재 값을 반영해 정치적 요인과 관련없이 요금을 자동적으로 변화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물가안정이라는 측면에서 가격통제는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며 "다만 빈번해서는 안 되고, 제도적으로 정책결정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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