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선무당 입법이 서민만 잡는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15 18:25

수정 2023.05.15 18:25

[구본영 칼럼] 선무당 입법이 서민만 잡는다
인천시 미추홀구.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양아들 비류가 정착한 도읍이었다. 이 유서 깊은 삶의 터전이 최근 비극의 현장이 됐다. 이곳의 전세사기 피해로 거리에 나앉을 판인 청년 셋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달 17일 숨진 채 발견된 육상(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박모씨(31·여)도 그중 한 명이었다.

4㎏짜리 해머에 자신의 꿈을 실어 던지던 그였다. 하지만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 2700채를 보유한 '건축왕' 남모씨 일당을 만나면서 비극의 싹은 텄다. 이 일당의 아파트가 지난해 3월 경매에 넘어가면서다. 힘겹게 모은 전셋값 9000만원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그의 미래도 무너져 내린 격이다

이 '맨발의 청춘'의 비극을 개인적 불운으로 돌리긴 어렵다.
유사한 전세사기가 전국화할 낌새여서다. 허점투성이 주택제도가 미추홀 건축왕, 수원의 '빌라왕' 같은 괴물을 곳곳에서 만들어내고 집 없는 서민층을 울리고 있으니…. 이는 역대 정부의 허술한 주택정책이 누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 당시 여권이 강행 처리한 임대차 3법이 결정적 뇌관이었다는 사실이다.

문 정부는 징벌적 세금으로 '미친 집값'을 잡으려 했으나, 전월세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부작용이 불거졌다. 그러자 2020년 8월 더불어민주당이 빼든 카드가 임대기간을 "2+2"로 늘리고 전세 인상률을 5% 내로 제한하는 임대차 3법이었다. 독일 월세시장에서 힌트를 구한 입법이었다. 그러나 금리와 연동되는, 우리만의 전세시장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법안 통과 뒤 전세가는 치솟고 갭투자의 온상인 전세대출도 급증했다.

그때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런 부작용을 경고했었다.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연설을 통해서다. 하지만 거대여당 민주당은 귀를 닫고 임대차 3법을 밀어붙였다. 이후 소형 아파트와 빌라 전셋값은 급등하고, 부동산 업자들은 자기 돈 없이 보증금만으로 이를 수백 채씩 사들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며칠 전 "과거 정부 반시장 정책이 전세사기의 토양이 됐다"고 지적한 배경이다. 임대차 3법이 전세사기 원인의 전부는 아닐지언정 최소한 그 판은 깔아준 꼴이다.

더욱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자기 집 전셋값은 대폭 올렸었다. 예상되는 법안의 부작용을 눈치챘다는 얘기다. 결국 건축왕들의 사기도박판에서 서민 임차인을 상대로 미리 개평 뜯는 행태를 벌인 셈이다. 그러고도 민주당은 이제 와서 국민 세금으로 전액 보증금 피해보상을 해주자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기 피해를 혈세로 메울 순 없다. 정책 실패를 인정해야 실효적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윤 전 의원 말마따나 "이번 사기는 과거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 보상해주고, 다른 사기 사건에 대해선 보상하지 않는다"고 해야 정상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도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했다. 나랏돈을 쏟아부은,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서민 일자리만 없앤 전철을 되밟을 텐가. 거대야당이 이제 각종 반시장적 포퓰리즘 입법 폭주를 자제할 때다.
전세사기 피해로 인한 서민층 피눈물의 함의를 헤아린다면 말이다.

kby7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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