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40여 년 전 미국으로 입양됐다 추방당한 입양인에 대해 법원이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홀트)의 배상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다만 입양인 측이 홀트와 함께 책임을 물은 우리나라 정부의 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박준민 부장판사)는 16일 오후 신송혁(48·아담크랩서)씨가 정부와 홀트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입양인이 해외 입양 과정을 문제 삼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재판부는 신씨가 청구한 2억100원 중 홀트에 대해 "1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신씨 측이 주장한 정부 책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청구는 기각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1979년 세 살이었던 신씨는 미국에 입양돼 양부모의 학대 끝에 파양됐다. 이어 두 번째 양부모 밑에서도 학대가 이어지며 재차 파양을 겪었다. 결국 신씨는 성인이 될 때까지 시민권을 얻지 못하다가 영주권 재발급 과정에서 청소년 시절 경범죄 전과를 이유로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됐다.
신씨 측은 홀트가 입양 당시 신씨의 친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고아로 호적을 꾸며 해외로 보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고아 호적을 만들면 '친부모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입양이 가능해진다. 신씨는 우리나라 정부에 대해서도 홀트 등 입양기관이 모든 국제 입양 절차를 대리할 수 있게끔 하는 '대리입양 제도'를 허용하는 등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홀트가 후견인으로서의 보호 의무를 위반하고 신씨에 대한 국적취득 확인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다만 허위의 고아 호적을 만들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가의 배상 책임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부는 아동의 입양에 관한 요건과 절차에 필요한 사항을 정해 권익과 복지를 증진하는 일반적인 의무를 부담한다"며"특정 당사자가 직접 권리침해 또는 의무 위반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신씨 측은 유감을 표하며 "항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신씨 측 대리인은 재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홀트에 대한 배상책임 인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불법 해외 입양을 관리, 주도, 계획, 용인해 온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대해선 신씨와 의논해 항소해서 밝힐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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