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제 몸 하나 책임지지 못하는데 부인과 자식 챙기는 건 무리라 생각해 자꾸 미루게 되네요"
19일 뉴스1이 만난 30~40대 미혼 남성 대부분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보여주기식 프러포즈, 값비싼 예물 주고받기 등도 결혼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노동과 출산 의향의 동태적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고소득 남성들은 30대 후반 이후 혼인 비율이 높아지지만 저소득 남성들은 미혼인 상태로 남아있는 비율이 높았다. 다만 모든 소득구간에서 남성들은 결혼을 늦추는 경향이 확인됐다.
◇ "결국 돈 문제…아내·자식 책임지는 건 무리"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정모씨(31)는 "부모님께 몇억씩 증여를 받아서 서울 소재의 아파트에 살고, 좋은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은 저렇게 해주지 못할 것 같다'는 공포심이 너무 커 여자친구와 결혼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며 "결국 다 경제적인 문제"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형 로펌에 재직 중인 40대 변호사 A씨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고, 학자금 대출과 신용대출을 갚다보니 30대 후반이 돼 있었다. 부모님도 그리 건강하지 못하셔서, 매달 부모님께 병원비와 생활비도 보내드리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가정을 꾸려 아내와 자식을 책임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결혼을 자꾸 미루게 됐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여의도 소재 증권가에 재직 중인 이모씨(37) 또한 주거지 마련 등의 이유로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망설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집을 산 친구 부부가 원리금을 갚지 못해 결국 개인회생을 신청했다"며 "반면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준비가 된 채 결혼한 사촌 형네 부부는 난임치료를 받고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 '결혼해야 돈 모은다' 옛말…"돈 모아야 결혼"
공무원 김모씨(37)는 "예전에는 '결혼을 해야 돈을 모은다'고 말을 했지만, 이제는 돈을 모아야 결혼을 할 수 있다"며 "남녀 모두 돈을 벌게 되면서 '결혼'에 대한 기준 자체가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최소 수억원에 달하는 전세, 수천만원에 달하는 예식장 비용, 명품백 등 예물 등은 기본으로 준비하는 것 같다"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비싼 명품백 등을 받은 프러포즈 사진 등 과시용 사진을 올리면서 남들과 비교하는 문화가 생긴 것도 결혼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부는 직장 위치, 코로나19 팬데믹 유행으로 인해 이성과 만날 기회가 적어진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전라남도 소재 공기업에 재직 중인 김모씨(41)는 "코로나19 유행이 끝나자 앞자리가 바뀌어 있었다"며 "코로나 유행 전에는 페스티벌, 소모임 등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나이도 있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서 이성 교제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충청도 소재 대학교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김모씨(44)는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해 2년 째 인연을 찾고 있는데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주변에서는 국제결혼도 생각해 보라고 조언을 해 고려하고 있다"고 허탈해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결혼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요즘에는 '선택'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이 때문에 결혼 여부도 개개인의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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