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집 그 이상이다. 아파트는 영혼을 쉬게 하는 삶의 공간이자, 자산 증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어디 사십니까?'라는 질문에 숨겨져 있는 의미처럼, 아파트는 또 너와 나를 구별하는 표지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파트 공화국'(후마니타스, 2007년)이라는 책을 쓴 벽안의 프랑스 여성 사회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 아파트(특히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꽂힌 것은 아마도 이런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리라.
이 땅에 아파트라는 이름의 주거 공간이 처음 생긴 것은 1930년이다. 일본 기업 미쿠니(三國)상사가 한국으로 돈 벌러온 경성 주재 일본인 직원들을 위해 지은 '미쿠니 아파트'가 최초다. 3층에 불과한데다 건물 내부에 공동화장실과 식당이 있어 아파트라기보단 관사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으나, 어쨌든 '아파-트(アパート)'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현대식 건축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서울 남산 자락(지금의 회현동)에 사원용 공동주택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90여년이 지난 지금도 옛 건물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한 채 주거용으로 쓰이고 있다.
'경성의 아파트'(집출판사, 2021년) 저자들이 미쿠니아파트를 '(재)발견'해 세상에 알리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1932년 지어진 '충정아파트'라는 게 정설이었다. 일본인 건축가 도요타 타네오가 지어 '도요타(豊田) 아파트'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던 이 건물은 세월의 흔적 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광복 후 호텔로 용도가 변경됐던 이 건물은 6·25전쟁 땐 북한군에 의해 인민재판소로 사용되기도 했고, 전쟁 뒤엔 다시 관광호텔로 쓰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 다시 아파트로 일반에 분양돼 유림아파트가 됐고, 1979년엔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건물의 절반 가까이가 잘려나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후 급속한 노후화에 따라 철거냐 재개발이냐를 놓고 끊임없는 논란을 벌였지만 결론을 못내다가 최근 철거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럼 독자적인 우리 기술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는 어디일까? 정답은 주택영단(지금의 LH)이 1958년 서울 성북구 고려대 담장 옆 언덕에 지은 종암아파트다. 5층짜리 건물 3개동에 총 152가구가 입주한 이 아파트에는 무엇보다 수세식 변기가 집안에 설치됐다. 당시 아파트 준공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은 "현대적인 이 아파트에는 편리한 수세식 화장실이 건물 내부에 있다"며 뿌듯해 했다. 처음엔 '종암 아파트먼트 하우스'라는 다소 긴 이름으로 불렸던 이 아파트의 최초 입주자는 정치인, 대학교수, 문화예술인 등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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