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참다 못한' 건설현장의 제보…수사로 뿌리뽑은 부조리[新경찰청사람들]

뉴스1

입력 2023.05.27 06:50

수정 2023.05.27 06:50

서울 동대문구 한 주택재건축현장 모습. 2023.3.1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 동대문구 한 주택재건축현장 모습. 2023.3.14/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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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1) 김동규 기자 = "환경단체가 살수차를 독점하고 있어요" "자신들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덤프트럭 반입을 막고 있습니다"

세종경찰청 남부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하는 이용훈(45) 경감은 지난해 12월 2건의 제보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건설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올봄 사회적인 이슈가 됐던 건설노조 비리 수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 25일 세종시 남부경찰서에서 만난 이 경감은 처음 제보를 받았을 때 믿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제보가 온 이상 수사에 착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NGO 환경단체라면서 4억3000만원 공갈

수사에 착수하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건설현장의 부조리가 드러났다. 실제로 세종시 여러 건설현장에서 물을 뿌려 먼지를 제거하는 살수차를 특정 업체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업체는 세종지역의 한 지역 건설노조원들이 대표 등을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업체는 NGO(비정부기구) 환경단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세종시 건설 현장 40여곳을 돌아다니면서 먼지 상태 등을 확인했다. 이후 먼지가 조금 많아 보이는 현장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에 시청에 민원을 넣겠다면서 현장 소장들을 압박하며 자신들의 살수차 사용을 강요했다.

이 경감은 "이 사건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으로 살수차 업체가 NGO 환경단체의 탈을 쓰고 건설현장의 약점을 노려 공갈을 마치 관행처럼 해 왔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환경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권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 경감은 "대한민국의 모든 공사 현장에서는 환경단체라는 말만 들어도 겁을 먹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업체는 세종시 내 거의 모든 건설현장에서 자신들의 살수차만 쓰도록 현장 소장을 압박해 총 40여개 현장에서 4억3000만원을 받아갔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에 소속된 한 지역 건설노조 조합장은 실제로 1년간 400여건의 먼지 관련 민원을 세종시에 넣기도 했다. 민원이 들어가면 시에서는 현장 확인을 하러 나오고 이로 인해 공사는 지연됐다. 현장 소장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 업체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경감은 올해 초까지 노조원 등 핵심 피의자 5명을 검거해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현재 공동공갈혐의, 업무방해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있는 상태다. 이 사건 이후 세종시의 공사현장에서의 살수차 관련 공갈 협박은 사라졌다.

◇노조에 들어간 전 조폭들끼리 이권 다툼도…560만원 갈취한 혐의도 밝혀내

이 경감은 두번째 제보 수사도 동시에 진행했다. 몇몇 건설현장을 확인해 보니 실제로 서로 다른 노조끼리 이권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공사 지연이 발생하거나 비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일감을 주지 않는 경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 결과 지난 2021년 가을 세종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은 덤프트럭과 관련된 이권 다툼으로 공사에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 좋은 덤프트럭 토사반출을 놓고 특정 노조 소속이 아니면 일감을 주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다른 특정 노조원이 공사 현장에서 집회 등을 열어 공사를 방해했다.

이 경감은 "덤프트럭 일감을 배정하는 업체의 대표는 특정 노조 소속으로 전직 조폭이었고, 이에 반발한 다른 노조에도 현직 조폭의 조직원이 간부급으로 있었다"며 "조폭이 들어간 노조들끼리 싸움을 보다 못한 한 공사업체는 그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한 현장 관계자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경찰에 제보를 한 것이었다. 이 경감은 공동공갈, 업무방해, 공동강요 혐의로 17명을 검거해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 과정에서 과거 2017년의 불법행위도 밝혀냈다. 당시에도 덤프트럭 일감을 배정하는 업체가 특정 건설 현장의 소장에게 자신들이 지정한 업체의 덤프트럭을 쓰지 않으면 공사를 방해하거나 시청에 민원 등을 제기하겠다며 협박했다. 이 과정에서 업체는 560만원을 현장 소장들로부터 갈취했다.

이 경감은 "제보를 받아 관련자들을 조사하다가 갈취가 의심되는 계좌 거래내역을 확보해 불법행위에 대한 자백을 받아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7년부터 이런 건설현장에서의 불법행위가 마치 관행처럼 이어져 오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며 "이 밖에도 자신들이 속한 노조의 노조원을 채용해 달라 하기도 하고, 일은 안 하고서 일을 한 것같이 해서 돈을 보내달라고 강요한 사건도 수년간 관행처럼 이어져왔다"고 덧붙였다.

이 경감은 "다행히도 이 사건들의 영향 때문인지 최근 세종시 건설현장에서는 불법행위 신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며 "특정 노조에 소속돼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공사 현장에서 일감을 얻지 못했던 사람들이 큰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고 웃었다.

◇ 3대 경찰 가족 "공감받는 수사로 범죄 해결할 것"

이 경감에겐 '경찰'의 의미가 남다르다. 그의 아버지도 경찰이었고 심지어 그의 딸도 현재 경찰 교육을 받고 있다. 3대가 경찰인 가족인 셈이다.

2004년 일반 순경공채로 경찰에 입직한 그는 '공감받는 수사'가 신념이다.
이 경감은 "피해자든 피의자든 모두 억울한 점이 없게끔 공감 가는 수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를 위해 본격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대화를 많이 해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후배 경찰들을 향한 애정도 남다르다.
그는 "건설현장 불법행위 단속 등의 경험을 후배들과도 적극 공유해 특진과 같은 큰 성과를 얻게 해 주는 수사를 계속 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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