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 일본 등 14개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웍(IPEF)이 2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주도로 공급망 협력을 이끌어냈지만 이 과정에서 갈등도 표출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통상장관 회의에서 일부 회원국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자국내 일자리 보호와 미 제조업 부양을 점점 더 강조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이같은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경제성장을 교역에 의존하는 더 작고, 덜 부유한 나라들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다.
공급망 협정
IPEF 14개국 통상장관들은 27일 디트로이트에서 세계 최초의 공급망 협정에 합의했다.
우선 공급망에 위기가 발생하면 IPEF 회원국 정부로 구성된 '공급망 위기대응 네트워크'를 가동해 상호 공조하기로 했다. 대체 공급처 파악, 대체 운송경로 개발, 신속통관 등을 협의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급망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조처를 자제하고, 투자확대, 공동연구개발(R&D) 등을 통해 공급선 다변화도 꾀하기로 했다.
또 사업장 노사상황을 점검해 숙련 노동자 육성과 노동환경 개선을 통한 공급망 안정화를 꾀하는 '노사정 자문기구'로 구성하기로 했다.
이행상황 점검을 위한 '공급망 위원회'도 만들어진다.
미국, 한국, 일본, 호주, 인도,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베트남, 피지, 브루나이 등 14개국이 이같이 합의했다.
미 일자리 창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IPEF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러몬도 장관은 팬데믹 기간 말레이시아 반도체 공장이 폐쇄되지만 않았다면 미시간주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는 일도, 노동자들이 무급휴가에 들어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IPEF가 미 일자리를 지키고, 공급망이 가동되도록 담보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자유무역은 실종
WSJ에 따르면 미 의회와 행정부 정책 담당자들 사이에 교역이 미 일자리에 미치는 충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자유무역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는 가운데 IPEF에는 관세 인하, 시장 개방 강제와 같은 전통적인 자유무역협정(FTA)의 인증 같은 대응수단은 포함돼 있지 않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USTR)도 러몬도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미 일자리 창출을 중심에 둔 무역정책이 미 중산층에 가장 큰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이 대표는 지난주 미 노조 지도부가 참석한 한 패널 회의에서 "너무도 오랫동안 미국의 교역정책은 자유화, 효율성, 비용절감에 집중돼 있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미국 우선주의에 반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협정 참여국 일부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데미언 오코너 뉴질랜드 통상장관은 미국의 이같은 시각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오코넌 장관은 "우리는 교역을 문제가 아닌 해결방안으로 본다"면서 "뉴질랜드의 교역 연관 산업 종사자들은 교역과 연관되지 않은 산업 종사자들에 비해 훨씬 더 높은 보수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 불평등, 노동자 권리 등에 대응하려면 교역정책이 아닌 기업 관련 상업정책, 세제 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통상차관 류친통도 미국 노동자들만이 통상 혜택을 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문제를 말레이시아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세계무역기구(WTO)도 나섰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왈라 WTO 사무총장은 타이 대표에게 작은 나라, 개발도상국들과 더 긴밀히 대화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무역정책 기조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대화에 나서라는 것이다.
그는 "이들 나라는 이번 합의(IPEF 공급망 협정)가 그들의 시장 접근을 막는 또 다른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재계도 우려
미 기업들 상당수도 바이든 행정부의 IPEF 접근 방식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미 상공회의소를 비롯한 20여 재계단체는 앞서 26일 타이와 러몬도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같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서한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협상 방안에 담긴 내용과 방향에 점점 더 우려하고 있다"면서 "의미 있는 전략적, 상업적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위험해질 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 그리고 그 너머의 미 통상, 경제적 이익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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