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최근 제주의 한 전세버스 기사가 참사로 이어질 뻔한 대형사고에서 30명이 넘는 대만 관광객들의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기적의 버스 운전자는 공군에서 32년간 수송 분야 부사관으로 복무한 이인수씨(55)다. 지난해 전역한 그는 작년 10월부터 제주교통 소속 버스기사로 인생 2막을 열었다.
승객의 안전벨트 착용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는 습관으로 인명피해를 줄인 데 이어 사고를 직감하고 충돌 직전 기지를 발휘해 더 큰 피해를 막기도 했다.
사고는 지난 25일 오전 10시30분쯤 제주시 조천읍 선화교차로에서 신호를 위반한 덤프트럭이 대만 관광객 34명과 가이드 1명 등 총 35명의 승객이 탄 이씨 버스 우측 측면을 들이받으며 발생했다.
25톤 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대형버스를 충격한 사고였지만, 버스 승객 중 중상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 모두 '천만다행'이라며 입을 모을 정도였다.
30년 넘게 군 생활을 한 이씨에게 안전은 몸에 밴 습관이자 신념이다.
단체 관광객을 수송하는 이씨는 출발 전 승객들에게 항상 "안전벨트 안 매면 절대 출발하지 않는다"는 엄포 아닌 엄포를 놓고, 일일이 착용여부까지 확인한다. 사고 당일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운전을 아무리 조심히 한다고 해도 불가항력이라는 게 있고, 급정거할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안전벨트를 모두 착용해야 출발한다"며 "군 복무 시절 내내 지킨 몸에 밴 습관"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건 승객 전원이 안전벨트를 매고 사려니숲길을 출발한 지 불과 10여 분만이었다.
대형 사고가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던 건 이씨의 순발력과 기지 덕분이기도 했다.
사고지점인 사거리 교차로로 진입한 이씨는 군에서 배우고, 직접 병사들에게 교육했던 대로 좌우를 계속해서 확인하며 주행했다. 당시 우측에 승용차 한 대가 신호대기 중인 상황이었고, 재차 확인했을 때는 덤프트럭이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빨간불에도 속도가 줄지 않는 트럭을 보고 사고를 직감한 이씨는 순간적으로 왼쪽 차선으로 핸들을 틀고, 급가속해 최대한 버스 충격 범위를 줄였다.
그는 "혹시나 하는 찰나에 신호등과 표지판이 있는 왼쪽으로 핸들을 조작했고, 그 후에 트럭이 충격했다"며 "신호등 등 쇠기둥들이 충격을 흡수해줘 버스가 뒤집어지지 않았다. 만약 차선을 유지해 그대로 직진했으면 버스가 전복돼 더 큰 사고가 날 뻔했다"고 설명했다.
직후 버스는 인근 화단까지 밀려서야 멈춰 섰고, "전쟁이 난 줄 알았다"는 목격자 말마따나 사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버스 측면은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유리창도 모두 깨져 땅바닥에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씨는 얼굴에 피가 나고, 팔과 다리를 다쳐 몸이 성치 않은 와중에도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려 119신고를 부탁하고, 구급대 도착 전 승객들을 하차시켜 안전한 인근 공터로 안내했다.
이씨 덕에 승객 35명 모두 외상 없이 가벼운 부상으로, 병원 진료만 받은 뒤 곧장 숙소로 복귀했다. 사고 규모와 처참하게 부서진 버스를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인 셈이다.
이씨는 “군에서 30년 넘게 생활하며 체득한 노하우와 습관들 덕에 큰 피해가 나지 않은 것 같다”며 “회사 사장님부터 기사들에게 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강조해 기사들도 항상 인지하며 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입국한 대만 관광객들은 관광 일정을 마친 뒤 27일 오전 예정대로 제주를 떠났다.
이씨는 출국길 공항까지 동행해 승객들에게 "즐겁게 여행 오셨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 죄송하고, 그래도 아무 일 없이 돌아가시게 돼 감사하다. 고국에서도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란다"고 전하기도 했다. 관광객들은 이씨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정말 고맙다. 덕분에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간다"고 화답했다.
생명띠라 불리는 안전벨트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례가 된 만큼 제주동부경찰서는 이씨에게 조만간 대형사고 예방 유공 표창을 수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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