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찾는 1974년생 조민호씨
춘천 근화동 근처 집으로 추정
춘천 근화동 근처 집으로 추정
조씨는 "너무 아기일 때 이별을 경험해 가족에 대한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며 "어머니는 갸름하고 예뻤던 것 같다. 집은 나무로 된 문이 있는 단층 목조건물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집에는 마당이 있었고 마당에는 큰 개가 있었다. 또 어릴 때 왼쪽 손이 찢어져 수술을 했던 기억도 있다. 수술로 생긴 상처는 지금도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름과 나이는 맞을 거 같지만 명확하다고 할 수는 없다"며 "어렴풋이 어머니가 (저를) 민호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으니 이름은 맞을 것 같기는 하다. 성은 맞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조씨가 가족과 이별하게 된 사연도 단편적인 기억에 그친다. 조씨는 "어머니와 강원도 춘천시 육림고개에 있던 재래시장에 갔다가 어머니 손을 놓치는 바람에 길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며 "시장을 헤매다가 어떻게 오순절보육원에 맡겨지게 됐고 거기서 자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에서 밀가루가 섞인 큰 햄소시지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며 "시장이 집 근처였고 맡겨진 곳이 오순절보육원이라는 점을 봤을 때 인근 춘천시 근화동에 원래 살던 집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와 이별해 기억이 없는 만큼 조씨가 가족을 찾기 위해서는 보육원에 맡겨질 당시 작성됐을 기록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오순절보육원에는 그런 기초적인 기록이 없었다.
조씨는 "성장한 이후 가족을 찾기 위해 오순절보육원을 다시 찾았지만 화재로 자료들이 소실됐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며 "더구나 보육원에서는 저를 영국으로 입양 보내겠다고 단독호적을 만들었다. 다만 너무 울고불고해서 영국으로 입양은 무산됐다고 들었다"고 언급했다.
영국으로 입양이 무산된 이후 조씨는 오순절보육원을 나와 강원도 원주의 한 고아원으로 옮겨져 17살때까지 성장했다. 그리고 고아원의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조씨는 "고아원은 당시 수용소 개념이었다. 강제노동도 시키고 해서 사는 게 지옥이었다"며 "결국 17살때 고아원을 탈출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17살때 탈출한 이후 뿌리를 찾고 싶은 마음에 오순절보육원을 찾았으나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며 "이후 춘천시청이나 강원도청 아동복지과를 찾으며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개인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방송과 신문에도 소개가 됐지만 가족으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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