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한 취재기자의 정당한 취재활동에 대해 한 정부부처 대변인이 폄하성 발언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최근 사회문제로 급부상한 학교폭력의 대책을 소관 부처 장관에게 질문하는 과정에서다. 발단은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학교폭력 등 교육현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비롯됐다. 당에선 국회 교육위 국민의힘 간사인 이태규 의원 등이, 정부 쪽에선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교육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당정은 이날 챗GPT로 대변되는 디지털 충격에 대비, 오는 2025년 AI(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도입 방침을 밝혔다. 또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학교폭력 피해자 대책과 관련,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해나가기로 했다.
문제는 이태규 간사가 회의결과 브리핑후 취재진과의 질의 응답 과정에서 벌어졌다. 통상 당정회의 결과 브리핑 후 소관부처 장관이 질의응답에 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작 이주호 장관은 취재진 질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이에 기자가 간담회장을 나서는 이 장관에게 '학교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기숙형 지원기관 해맑음센터 폐쇄조치를 두고 교육부의 늑장 대처라는 지적이 있다'며 견해를 묻자, 이 장관은 "당에서 (발표)하는거라서, 당으로 가시죠"라고 밝혔다. 기자가 '학교폭력 근절대책이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의견을 밝혀달라'고 재차 요청하자 이 장관은 "국가책임을 강화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이해해달라"며 차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 관계자가 몸으로 취재진을 막았다.
이후 교육부 대관 담당 A씨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조금 전 장면을 촬영한 카메라 기자의 소속사가 어디냐고 물어왔고, 급기야 김천홍 교육부 대변인은 기자에게 "공식적인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장관한테)백블 인터뷰를 요구하는 게 경우가 좀 아닌 거 같아 전화드렸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는 "공식브리핑 중 소관부처 장관이 질문을 받지 않고 나가길래 입장을 듣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김 대변인은 "당에서 공식브리핑이 진행되고 질문답변도 하는데, (장관에게 백블을 요구하는 것이) 좀 그런 거 같아 전화드렸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촬영하던)카메라는 또 누군가"고 재차 물었다.
민생과 직결된 공식 브리핑 내용에 대해 국민을 대신해 소관부처 장관에게 질문한 것을 놓고 당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경우가 아닌 일'로 지칭한 것이다. 학폭문제가 최근 사회적 핫이슈로 떠오른 의제인 만큼 기자는 이날 당정회의 내용에 대한 소관 부처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취재하고자 했지만 이 장관은 당 브리핑을 내세워 사실상 취재에 응하지 않은 셈이다.
그동안 진행된 상당수 당정회동의 경우를 보더라도 관련 부처 장관은 회의 내용 브리핑 이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해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마약 범죄 근절 대책 당정회의를 비롯해 전세사기 특별대책 관련 당정협의에 참석할 때마다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거의 빼놓지 않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건폭 당정회의나 전세사기특별법 관련해 수시로 회의를 가지면서도 기자들과 원활하게 소통을 해왔다. 하나같이 국민적 관심이 높은 이슈들이기 때문에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 취재진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용산 대통령실도 평소 각료들에게 현장행정 구현과 함께 수시로 언론과 소통을 통해 정부 핵심 국정과제의 방향성을 국민들에게 적극 설명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물론 소관부처 장관이 취재진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할 의무는 없다. 다른 급한 일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직자는 국민의 공복(公僕·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이다. 더구나 대변인은 부처의 핵심 정책을 국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부처와 취재진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 아무리 당 관계자가 브리핑 중이라도 소관부처 만큼 구체적인 내용을 잘 알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국민적 관심사가 큰 이슈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국민을 대신해 장관에 질문을 던진 취재기자에게 '경우가 좀 아닌 거 같다'는 표현을 쓴 건 되레 경우가 아니라고.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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