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클럽에서 택배까지… 다양해진 마약 유통경로, 끝까지 쫓는다 [무너진 마약청정국]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01 18:15

수정 2023.06.01 18:15

(3) 류남우 경감에게 듣는 마약사범 검거현장 스토리
하와이에서 온 ‘주인 없는 택배’
상자에 남은 흔적 하나로 추적
해외 총책 등 69명 무더기 검거
값싼 마약들 클럽 통해 많이 퍼져
검거 위해 10여시간 잠복근무도
수입과자로 포장된 '마약택배' 상자. 류 경감은 택배상자에서 단서를 포착해 해외총책을 잡아들였다. 부산경찰청 제공
수입과자로 포장된 '마약택배' 상자. 류 경감은 택배상자에서 단서를 포착해 해외총책을 잡아들였다. 부산경찰청 제공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 소속 류남우 경감 사진=김동규 기자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 소속 류남우 경감 사진=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부산=김동규 기자】 5월 30일 오후 1시. 승용차 한 대가 부산의 한 주택가 골목에 멈춰 섰다. 차량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빌라에서 사람이 나올 때마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스마트폰 앨범에 저장된 용의자 사진과 인상착의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 소속 류남우 경감(47)은 이날 마약사범 1명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 중이다. 용의자의 집주소까지 특정했지만 잠복근무를 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벨을 눌러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약사범은 체포 과정에서 뛰어내리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 위험도도 크다. 잠복근무를 하다 보니 시간은 저녁 9시를 훌쩍 넘겼다.

■10여시간 잠복근무 끝에 검거

"저 친구 같은데요?"

저녁 11시. 운전석에 탄 동료가 키 175㎝쯤 되는 한 사내를 가리켰다. 류 경감이 이끄는 체포조는 조용히 A씨에게 다가가 말을 건 후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했다. A씨는 이른바 '엑스터시'로 불리는 합성마약(MDMA)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이미 수사 중인 마약사범을 통해 받은 첩보다.

류 경감은 "마약사범들은 자신의 형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같이 투약한 공범이나 마약 판매책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렇게 첩보를 받아 수사하면 쉬울 것 같지만 실제 체포 과정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위험도가 커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엑스터시 같은 마약은 주로 클럽에서 많이 퍼진다. 필로폰 같은 이른바 '하드 드럭'에 비해 가격이 싸기 때문에 투약자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류 경감은 "필로폰에 비해 강도가 낮은 마약들이 클럽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면서 "이런 가벼운 마약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결국 나중에 더 강도 높은 경험을 원하게 되고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주인 없는 '마약택배', 해외 총책까지 검거

류 경감은 지난 3월 마약사범 69명을 체포한 이른바 '하와이 마약사건'에서 공을 세웠다. 택배상자에 든 마약 유통경로를 집요하게 추적해 해외 총책을 잡아들인 케이스다.

2021년 12월, 한 주민이 "우리 집으로 온 정체불명 소포에 마약이 들어 있다"고 신고했다. 마약 수거책이 미처 가로채지 못해 생긴 사건이다.

류 경감은 "보통 해외에서 국내로 마약이 들어올 때 마약수거책이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신과 연고가 없는 불특정한 가정집을 수신지로 기재한다"며 "택배가 도착한다는 알림 메시지를 우체부로부터 받으면 마약수거책은 수신지에서 대기하다가 우편물을 거둬가곤 하는데, 이번 사건에선 수거책이 우편물을 집 주인보다 먼저 거둬간 것을 실패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마약우편물이 국내에 들어온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근처 사설 방범용 CCTV는 시간이 지나 당시 영상이 지워져 있었다.

류 경감은 택배상자에 수사를 집중했다. 유전자(DNA)검사와 혈흔검사 등 온갖 과학수사기법을 동원해 과자봉지 4~5개가 들어갈 크기의 택배상자를 쥐 잡듯이 뒤졌다. 국립과학수사대를 통해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 전문가에게 택배상자에 대한 감식을 맡기기까지 했다. 이 같은 끈기 덕에 해외 총책의 신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국내외 수사기관에 신분조회를 한 결과 지난해 5월 해외 총책 한모씨를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다.

류 경감은 일단 한씨의 여권을 무효화하고 지난해 11월 한씨의 부모에게 찾아가 입국하도록 설득했다. 수사에 협조토록 해 형량을 조금이라도 낮출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 결과 지난 1월 한씨의 신병을 인천국제공항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였다.

■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 이어 미국에서도 들어와

류 경감은 국내 마약 유통경로가 다양해지고 있어 정부의 강력한 수사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들어오는 마약 유입경로는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위주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하와이에서 온 마약 택배까지 발견되는 등 불법 유통경로가 다양해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일부 마약은 항공편뿐 아니라 배편 등 다양한 경로로 들어오면서 감시망을 뚫기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류 경감은 "택배상자로 들어오는 마약은 주로 초콜릿, 캔디, 커피, 고추장 등으로 포장돼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마약은 저가에 제조해 고가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판매책과 유통상들의 머리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류 경감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때에 따라 주말도 반납해야 하는 불규칙한 생활의 연속이므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면서 "하지만 마약 피해가 내 가족에게도 미칠 수 있으므로 힘들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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