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어느 한 국책은행 임원의 친절한(?) 조언 '눈길'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04 15:40

수정 2023.06.04 15:40

-IBK 정재호 감사, 美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명연설 촌평
-내부 직원들에게 나름의 국제정세 품평 및 조언 눈길
-20대국회 정무위 활약 당시 대부업체 세금 미납 폭로로 주목받기도
[파이낸셜뉴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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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 정재호 감사의 직원들을 위한 실질적 조언

IBK기업은행 정재호 감사가 최근 사보에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핵심 관료인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명연설에 대한 나름의 품평을 소개하는 글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과 패권다툼을 벌이는 바이든 정부의 핵심 정책과 미국이 추구하는 글로벌 경제안보축의 방향성 등을 감지해 내 내부 직원들이 글로벌 경제 흐름을 이해하기 쉽도록 조언해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 감사는 국회의원 출신으로 주로 금융권과 금융정책 당국을 소관 부처로 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통' 인사다.

정 감사는 우선 설리번 보좌관이 최근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서 '미국 경제 리더십의 갱신에 대하여'란 주제로 진행한 강연을 토대로 조언을 내놨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미국의 사회과학 연구소로, 1927년에 설립됐으며 오바마 정부 출범 후 급부상한 싱크탱크로 보수성향의 헤리티지재단과 쌍벽을 이루는 진보성향의 단체다.

정 감사는 설리번 보좌관에 대한 연설문 '촌평'이란 제목아래 "바이든 시대의 미국 경제, 안보, 민주주의, 노동과 환경, 중산층 등 핵심적 가치에 대한 좌표, 나침반을 새롭게 설정하고 있는 명연설이어서 서너차례 읽어봤다"고 운을 뗐다.

그는 "세계질서에 대해 시간적, 공간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목표도 설정하고 있다"며 "1990년대 목표와 2020년대 목표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역설한다. 지나온 30년 역사를 상당히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질서와 시장만능주의의 한계, 공공성보다 민영화, 감세, 규제완화, 낙수효과 기대경제 일변도 노선을 지적하면서 반성과 새로운 규범을 역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 감사는 "연설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알파벳은 '파트너(partner)와 함께'라는 표현"이라며 "무역에 있어서도 관세인하만 주구장창 외치는 수준의 FTA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한마디로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라는 용어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국가간 무역 장벽을 완하거나 없애기 위해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낮추거나 아예 철폐하는 게 FTA(자유무역협정)의 '이상적' 목적이지만, 미중패권 다툼처럼 경제안보적 측면에서 정면 충돌하더라도 물밑에선 언제든지 양국간 윈윈하기 위한 실무 협략을 진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정 감사는 보고 있다.

[홍소영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홍소영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설리번 美안보보좌관 명연설 해설 촌평 사보 게재

정 감사는 이어 "특히 중국에 대해선 설리번 연설 이후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닌, '디리스킹'(위험제거)으로 적당히 완화된 표현을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고 한 뒤 "미중간 무역대화도 물꼬를 텄다. 올들어 미중간 무역규모가 다시 상승세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정 감사는 이 부분을 놓고 미중간 서로 죽일듯이 반도체, 북핵 등 경제와 안보분야에서 싸우지만, 결국 돈(금융)의 흐름은 냉정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 기인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수년전부터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데다 세계 공장인 중국의 성장률이 코로나19 펜데믹 등으로 엔진이 꺼지면서 중국경제가 고꾸라질 것으로 봤지만. 지난해 10월 이후 중국으로 유입된 글로벌 자금은 역대 최대 수준에 달하고 있는 게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게 정 감사의 인식이다.

미국과 유럽 등이 '입으로는' 중국경제가 조만간 폭망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외쳤지만, 정작 글로벌 자금은 기술력과 내수면에서 거의 적수가 없는 중국경제의 회생 가능성을 보고 중국으로 유입되는 이 역설적 현상은 결국 '돈'은 수익을 향해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정 감사는 "한국 입장에선 '글로벌 투자와 파트너십'을 '다자개발은행'을 통해 집행될 것이라는 점에 상당히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중심은 중심인데 미국 혼자선 하기 버거우니까 (한국을 포함한)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모든 걸 공유하면서 개발하자는 제안으로 해석하는게 명쾌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중갈등 속에 새우등 터지는 한국'이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관계 자체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시대착오적 오산"이라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놓고 서로 경쟁적으로 유리한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액션과정에서 때로는 엄포, 때로는 친한 척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하는 게 정상적 사고"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정 감사는 미국 리더십의 '큰 변화'는 한국으로선 '절호의 찬스'로 봤다. 그는 "미국이 주도산업을 말할 때 한국을 빼놓고 말할 수 없고, 아이러니하게도 분단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쟁력이 되어 버렸고, 한국은 G8을 넘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전략이 곧 안보절략의 한 축이 될 것인 바 미국의 전략적 가치상 대한민국이 '옛날의 한국'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글로벌 위상이 달라진 만큼 (국제 경제안보분야에서 한국이)먹어야 할 것도 많이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우선이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나라로 한국을 함부로 깔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의 신 정책방향과 한국정부의 정책이 일체화될 것이므로 국책은행 IBK 기업은행이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눈높이를 퀀텀 점프(quantum jump)하길 간절히 바란다. 이후 일들은 기업은행 직원들의 기량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회 정무위원 당시 일본계 대부업체 세금미납부 폭로..주목받아

어느 한 국책은행 임원의 친절한(?) 조언 '눈길'

▲대구 ▲57세 ▲달성고 ▲고려대학교 ▲북방경제협력위원회 특별고문 ▲제20대국회 후반기 정무위원회 간사 ▲IBK기업은행 상임감사

한편 정재호 감사는 제20대국회 정무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면서 2016년 정무위 국정감사 시절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등 과거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한국 진출후 10년 이상 넘게 한국 서민 및 자영업자 등을 상대로 고금리 대출로 조단위대의 막대한 이자수익을 내고도 약 1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지방교육세를 납부하지 않은 사실을 국정감사에 집중 질타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정 감사의 활약으로 최윤 러시앤캐시 회장(현 OK금융그룹 회장)과 산와머니 최모 사장이 처음으로 국감장에 불려나왔고, 정 감사의 매서운 추궁으로 내지 않았던 지방교육세 납부를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정 감사는 일본계 대부업체 등이 지방교육세를 내지 않은 배경으로 기획재정부의 잘못된 대통령령에 대한 유권해석과 막대한 국부 유출 등을 꼬집으며 이를 강도높게 질타했다.

최윤 당시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은 지난 2002년부터 14년간 납입하지 않은 교육세에 대해 납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프로파이낸셜그룹은 대부업체 러시앤캐시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정 감사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02년 한국 영업을 시작하면서 교육세를 안냈다"며 이제라도 소급해서 납부할 의향이 있느냐"고 최 회장에게 질의했고 이에 최 회장은 "내부적으로 검토 중에 있다"고 답했다. 당시 아프로파이낸셜그룹이 내야 할 교육세만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정 감사는 이밖에도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하는 고금리와 불법추심 등 미등록 대부업체 피해가 최근 5년 새 4배 가까이 급증한 것을 지적하는 등 서민층을 상대로 고금리 이자장사를 일삼던 '대부업체 저승사자'로도 불렸다.

이후 당시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였던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민주당 원내대표)이 지방교육세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법안 발의한 지 4~5개월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은 과거 내지 않았던 지방교육세 미납분은 그대로 두고, 당시 시점에서 앞으로만 지방교육세를 내도록 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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