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성·재범 우려 등 기준 모호하다는 지적
여론에 영향 받는다는 연구도 있어
전문가도 기준 단순·획일화에 의견 분분
유튜버가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의자 신상을 무단 공개하면서 신상공개제도 기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대 여성을 발로 폭행해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신상 공개 대상이 아닌 반면 부산의 20대 여성 토막살인 피의자 정유정(23)의 신상은 공개되면서 신상공개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사 댓글이 많으면 신상공개?
5일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권리 보장,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피의자가 만 19세 미만이 아닌 경우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서 과반수(총 7명 가운데 4명 이상)가 찬성하면 신상 정보가 공개된다.
정유정도 이런 절차에 따라 신상이 공개됐다. 경찰은 정유정에 대해 "범죄의 중대성과 잔인성이 인정되고 유사범에 대한 예방효과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필요가 크다고 판단돼 신상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기준에 대한 설명에도 신상공개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모호성 때문이다. 범행의 잔인성과 재범 우려가 판단의 기준이지만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금천구 보복살인 사건' 등의 경우 범행의 잔인성이나 재범 우려에도 피의자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여러차례 신상공개 청원을 넣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선 검찰에 송치한 상태에서 신상공개를 판단할 권한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언호 로펌 빈센트 대표 변호사(피해자 측 변호인)는 "수사 초기에는 이 사건이 상해·폭행 부분에만 집중해서 수사가 이뤄지다 보니 특정 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상 신상 공개 심의 대상에 해당하는 강력 범죄가 아니었다"며 "수사 초기에는 강력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개할 시기를 좀 놓친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신상 공개 여부가 여론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까지도 존재한다.
지난해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신상 공개를 판단하는 기간(사건 발생 후 평균 4.96일) 이전인 사건 발생 후 4일차까지 신상공개가 결정된 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은 평균 5141개였다. 비공개 사건(평균 2151개)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다.
"수위 따라 일률 적용하자" vs "사건마다 상황 달라"
전문가들은 범죄 종류에 따라 일률적으로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이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잔인하다'·'중대하다'라는 기준 자체가 상당히 추상적"이라며 "살인·강간 살인 등 강력 범죄 피의자는 바로 신상을 공개하고 상습 강간 등 그외의 경우에만 심의를 거치면 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일률적 신상 공개 결정이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워낙 사건마다 특수한 경우가 많으므로 공개 여부에 대한 법적 기준을 획일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공개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뚜렷하게 얼굴이 보이는 머그샷을 공개하는 식으로 재범 방지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