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 이어 20대 또래를 무참히 살해한 정유정 사건까지, 최근 신상공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상공개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개인이 수사기관을 대신해 신상을 공개하기도 한다.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이지만 오히려 찬사를 보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사법 시스템과 국민의 법감정 간 괴리에서 발생한 현상으로 분석했다.
1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피의자 신상공개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일부 이뤄지고 있다.
정유정의 신상공개 사유인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의 경우 △범행의 잔인성·중대성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는 증거 입증 △국민 알권리 보장 및 재범 방지·범죄 예방 △청소년이 아닐 경우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신상공개가 가능하다.
현행법상 피의자의 재범 위험성을 막고 동일 범죄를 예방하는 등 공공의 이익 차원에서만 신상공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범죄 예방은 물음표…"신상공개를 형벌로 인식"
신상공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범죄 예방의 효과성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재범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신상공개에 쓰이는 사진을 머그샷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신상공개가 범죄 예방에 실질적으로 효과를 미치는 데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제로 범죄자들을 만나보면 형량보다는 수사기관에 잡히는 게 더 두려웠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며 "신상공개를 하더라도 반드시 공공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최근에는 신상공개를 일종의 형벌로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의 판단 없이 개인이 무단으로 공개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불법 논란'도 매번 빠짐없이 등장한다.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신상공개는 사회 질서를 해치는 '신상 털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과거 양육비를 미지급한 부모를 온라인을 통해 신상공개 한 '배드파더스'(Bad Fathers)는 양육비 이행과 관련해선 많은 격려와 호응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고 유죄 판결을 내려 '인권 침해'에 좀 더 방점을 두고 판단했다.
◇ "돌려차기 신상 공개 유튜버 지지한다"
이처럼 신상공개는 제도 효율성과 불법 논란이 잇따르지만,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한 유튜버를 향해선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엄연히 불법으로 공개한 것이지만, 연일 후원을 희망하는 누리꾼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적 제재'를 찬성하는 여론도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리서치코리아가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5000명을 대상으로 사적 제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은 50.1%, 반대는 33.6%로 나타났다.
최근 한 유튜버가 돌려차기 사건 피고인에 대한 신상공개를 한 행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에서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지 않아 필요하다' 등 지지한다는 응답이 55.3%였고, '독단적인 위법 행위' 등 반대 의견이 44.7%로 나왔다.
현 신상공개 제도를 어떻게 평가하나는 질문에도 '공개 기준이 약하다'가 55.2%로 가장 높았고, '기준이 엄격하다'는 26.4%에 불과했다.
◇ 사법 시스템-국민 법감정 괴리…"군중심리 작동"
불법 신상공개 행위가 이토록 큰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사법·신상공개 시스템과 국민의 법감정 간 괴리가 큰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돌려차기 피고인 A씨는 전과 18범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지난해 3월 출소하자마자 주거침입을 저질렀고, 이로부터 약 두달 후 혼자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뒤쫓아가 성폭행을 시도했다. A씨는 여전히 성범죄 사실에 대해 "그런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대중들은 A씨의 뻔뻔한 태도와 구치소에서 한 보복성 발언 등에 큰 분노를 느끼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항소심에서도 성범죄 여부를 가리기 위한 DNA 재감정이 이뤄졌고, 검찰의 구형도 1심의 20년에서 항소심 들어선 35년까지 올랐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적 제재에 큰 호응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사법 정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경찰범죄심리학전공 교수는 "누군가 직접 나서서 악을 끼치는 대상을 공격하거나 방어해 주는 행동에 '군중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이 하지 못한 행위를 대신 해준 것에 환호하는 심리 기제가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교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국민이 생각하는 법감정과 사법 시스템 간 간극은 쉽게 메울 수 없다"며 "법이 개정되더라도 예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스토킹 범죄, 데이트 폭력 등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나오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법감정을 따라잡지 못한 사법 시스템의 한계로 인한 현상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무분별한 사적 제재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시대 상황과 법 정서를 고려해 신상공개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며 "신상공개가 결정되면 머그샷을 일반화하고 경찰 포토라인에서도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모자나 마스크를 벗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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