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역경을 통한 전진'은 그의 삶의 모토다. 대만에서 태어나 9세 때 미국의 삼촌 집에 보내졌을 때부터 그랬다. 기숙학교에서 인종차별로 매일같이 변기 청소를 했다. 집중력은 탁월했으며, 컴퓨터 게임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럼이 많은 아이였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소름 끼친다고 느끼는 수준"이었다. 중요 행사마다 가죽재킷을 입고 나타나 반도체 칩을 손에 쥐고 흔들며 소리치는 지금의 모습에서 상상이 되는가. 집 근처 레스토랑 알바 생활이 큰 전환점이 됐다고 그는 기억한다. "세상이 막 붕괴할 것 같은 식당 러시아워를 겪으며 길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1993년 시작된 엔비디아 초기 역사도 실패의 연속이다. 역동적인 비디오게임 그래픽을 위한 강력한 컴퓨터 칩을 개발하는 것. 엔비디아의 목표였다. 이전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이다. 하지만 칩 가격이 비쌌고, 독자기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태동을 시작한 3D게임 시장이 그를 살렸다. 실패와 반전의 드라마는 그 후로도 숱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땐 고사양 그래픽 칩 수요가 끊기면서 파산 직전에 몰렸다. 황은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삭감하고 그 대신 기술인재를 더 뽑았다. 그때가 2009년이다.
바야흐로 엔비디아의 시대는 오고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엔비디아는 더 이상 그래픽카드 칩 회사가 아니었다.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개발해 적용범위를 컴퓨터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병렬 연산의 GPU 성능은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2006년 나온 쿠다(CUDA)는 천문학적 단순 연산을 반복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급 기술이었다. 쿠다는 인공지능(AI)의 딥러닝 핵심 기술로 거듭났다.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구글 알파고의 두뇌에 엔비디아 칩이 들어갔다. AI 빅뱅 신호탄을 쏜 오픈AI의 챗GPT는 쿠다 없이 구동이 불가능하다. GPU 점유율은 창시자 엔비디아가 70%로 시장 절대강자다.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2020년 인텔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달 꿈의 1조달러를 돌파한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엔비디아엔 CEO의 집무실이 따로 없다. 황은 실무회의를 좇아 이 방 저 방 다니며 일을 한다. 중간급 엔지니어가 황을 불러 회의를 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패에 의연하면서도 소통에 탁월한 황의 리더십이 엔비디아의 자산일 것이다. 그가 지난달 말 국립대만대 졸업식에서 한 축사는 기억될 만하다. 그는 자신의 실패담을 언급하며 "걷지 말고 뛰어라(Run, don't walk)"라고 조언했다. "먹이를 위해 달려갈 것인가.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달릴 것인가. 둘을 판별하기 어렵겠지만, 아무튼 달리면 길이 있다." 고단하고 지친 한국 청년들에게도 위로가 될 메시지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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