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역할 재정립 시사했지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 통과 못해
작년 발의된 개정안 논의조차 안돼
한은 "법안 별도 제출 불가능해... 정부부처와 의견조율 쉽지 않아"
작년 발의된 개정안 논의조차 안돼
한은 "법안 별도 제출 불가능해... 정부부처와 의견조율 쉽지 않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최근 중앙은행 역할 재정립을 시사한 가운데 지난해 발의된 한국은행법이 4건에 그치고, 관련 논의마저 진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금융통화위원 보궐과 관련된 조문이 개정된 후 한은법은 5년째 그대로다.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뿐 아니라 고용·금융안정, 기후변화 대응까지 발을 넓히는 가운데 한국은행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토론마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1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들어 발의된 한국은행법 개정안은 총 24건(철회 포함)으로 한 건도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다. 특히 지난해 발의된 한은법 개정안은 5건에 불과해 입법의 첫 단계인 법안 발의부터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연도별로는 △2020년 8건 △2021년 11건 △2022년 5건이 발의됐다.
■환경 변화에 맞춰 중앙은행 역할 재정립해야
이런 상황에 올해 들어 4번 열린 기재위 회의에서 한은법 개정안이 다뤄진 건 한 번에 불과하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화 불법 반출사건 방지법'이 지난 4월 17일 안건에 올랐는데, 이와 관련 의원 토론도 없이 기재위 수석전문위원이 법률안 검토 의견을 밝힌 게 전부다.
문제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중앙은행 역할과 권한에 대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나온 법안만 해도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의 목표부터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까지 굵직한 현안을 담고 있다.
△한은의 통화신용정책목표에 고용안정·금융안정을 명시하고 집행간부 증원, 자료제출권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김주영의원안 △한은의 정책목표에 고용안정 등 실물경제 지원을 명시하는 류성걸·박광온·양경숙의원안 △기후변화 대응을 통화정책 고려 요인으로 명시하는 민형배의원안 △한은의 CBDC 발행 근거를 명시하는 서병수의원안 △한은의 정부로부터의 국채 직접 인수를 제한하는 윤희숙·박형수·박수영의원안 등이다.
기재위 뿐 아니라 한은에서도 법 개정에 있어서는 미온적이다. 이창용 총재가 12일 한국은행 창립 73주년 기념식에서 한은법상 금융기관이 은행권에 국환된 점을 지적하는 등 중앙은행 역할 재정립을 시사했지만, 법 개정은 쉽지 않다는 게 인식이 퍼져 있다.
한은 관계자는 "중앙은행은 정부부처와 달리 법안을 별도로 제출할 수 없다. 의원 입법을 통하면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전에 정부부처와 조율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정부부처와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법 개정 노력 미미… 다른 정책 수단 찾아야
하지만 정부부처를 포함한 다른 공공기관들이 기관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입법 노력에 열을 올리는 것을 고려할 때, 한은의 법 개정 노력이 미진하다는 지적은 한은 안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은 급여와 복지 등 운영비에 관한 예산은 기획재정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데, 이로 인해 임금상승률이 1~2%대에 머문다는 게 한은 노조의 지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 법안 개정과 관련 준비 중인 것은 없다"면서 제도 개선을 위한 다른 방안도 있다고 밝혔다. 꼭 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예산과 관련해 기재부와 협의를 통해 결론을 내거나, 다른 정책 수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총재가 언급한 '금융기관 범위를 비은행권으로 넓히는 방안'은 금융감독원 및 금융위원회와 협의를 하고, 디지털 뱅크런에 대비한 '긴급 대출제도'의 경우 기존 한은법에 명시된 긴급 여신제도를 활용하는 것 등이다.
기재위 일각에서도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와 관련 투명성 강화, 한은 통계에 대한 검증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 개정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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