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민원 때문에' 화재경보 차단…일가족 목숨 앗아간 아파트 관리자들 기소(종합)

뉴스1

입력 2023.06.14 17:24

수정 2023.06.14 17:24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 화재 현장.(부산경찰청 제공)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 화재 현장.(부산경찰청 제공)


화재 단독경보형감지기.(부산 남부소방서 제공)
화재 단독경보형감지기.(부산 남부소방서 제공)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화재경보기를 수시로 차단한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실제 불이 났지만 화재 경보를 듣지 못해 일가족 3명이 숨진 '안전불감증' 사고로 재판에 넘겨졌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송봉준)는 업무상과실치사 및 소방시설법 위반 등 혐의로 아파트 관리사무소 방재담당 직원 A씨(41) 등 관리사무소 관계자 6명과 관리사무소 관리업체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14일 밝혔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해 1월2일부터 7월16일까지 202차례에 걸쳐 화재경보기 등 소방시설을 차단해 실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경보기가 울리지 않아 일가족 3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화재경보기가 자주 울려 주민 민원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화재경보기를 수시로 껐다.

화재 알림 과정은 화재 시 세대에 설치된 '화재감지기'에서 불을 감지하면 관리사무소의 '화재수신기'에 신호를 전달하고, 아파트 곳곳에 마련된 사이렌 등 '화재경보기'에 도달하면 경보가 울리는 방식이다.


사고는 지난해 6월27일 오전 4시13분께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의 2700여 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발생했다. 숨진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세대 거실에서 에어컨 전기 합선으로 불이 났다.

하지만 화재 발생 사흘 전부터 이미 화재경보기는 꺼진 상태였다.

사고 당일 A씨는 당직 근무하던 관리사무소에 화재수신기 신호가 울렸음에도 수신기를 초기화했다. 실제로 불이 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로 인해 불이 난 세대에 거주하는 부부 50대 남성 B씨와 50대 여성 C씨, 20대 딸 등 3명이 대피하지 못해 숨졌다. 뒤늦게 B씨가 불이 난 사실을 인지해 탈출을 시도했지만,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관리사무소 관리업체 2곳도 화재 시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화재 시뮬레이션과 법의학 자문 등을 통해 화재경보기가 정상 작동했다면 숨진 피해자들이 충분히 대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해 1월부터 화재 당일까지 아파트 화재경보기 작동 실태를 분석한 결과 화재경보기가 꺼져 있는 비율은 78%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관계자는 "일회성 과실에 의한 사건이 아닌 평소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안전불감증에 의해 발생한 참사임을 규명했다"며 "유족의 의사에 따라 법원에 출석해 증언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심리 치료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아파트 화재시설을 무단으로 차단하면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지난 4월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4단독(오흥록 판사)은 부산의 한 노후아파트 관리소장인 D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아파트에서도 빈번한 화재 경보 오작동으로 민원이 빗발쳤다.

D씨는 '화재경보가 울리면 화재탐지설비 수신기의 사이렌 정지 버튼을 누르고 현장 확인 후 실제로 불이 났을 때만 정지를 해제하라'는 내용의 매뉴얼을 만들고, 경비원들에게 숙지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지난해 2월6일 일이 터졌다. 당시 경비원은 아파트에 화재 경보가 울리자 매뉴얼대로 사이렌, 비상방송 정지 버튼을 누르고 경보가 울린 세대로 이동했다.


그런데 실제로 불이 난 상황이었다. 경비원과 소방이 초기 진압에 성공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화재 경보의 대부분이 오작동이라고 하지만 실제 화재 시 대피 등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아파트에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고 유죄로 판단한 이유를 밝혔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