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지나치게 엄격한 피의자 신상공개… 美·日은 얼굴·실명 보도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14 06:00

수정 2023.06.14 18:12

피의자 인권 보호 강화로
요건 충족한 극소수만 공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계기로
신상공개 확대 논의 급물살
지나치게 엄격한 피의자 신상공개… 美·日은 얼굴·실명 보도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마구 폭행해 의식을 잃게 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계기로 강력범죄 가해자 신상공개 확대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부산 서면의 한 오피스텔입구에서 피해자를 마구 폭행한 이모씨는 지난 12일 항소심에서 강간살인미수죄로 징역 20년형을 받았다. 부산고법은 이씨에 대한 신상공개 결정도 내렸지만 이씨가 상고하면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신상공개가 지연될 수 있다.

피해자 A씨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신상공개 요청을 했지만 검찰,경찰 모두 안된다고 했었다"면서 "어느 지표가 (충족)돼야 움직이는 거냐"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2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공개 확대 방안을 신속히 추진하라"며 법무부에 신상공개방안 수정을 지시한 바 있다.

■10년간 연 평균 3.2명 공개

14일 법무부와 검찰·경찰 등에 따르면 현행법상 피의자 신상공개는 인권을 감안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는 피의자 신상공개 요건으로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성폭력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규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도 비슷한 수준의 조건을 내걸고 있다.

문턱이 높은 만큼, 관련 규정이 시행된 지난 2010년 이래 실제로 피의자 신상공개가 이뤄진 경우도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헌법재판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도 시행 시점인 2010년 4월 15일부터 2020년 9월까지 경찰 수사단계에서 신상이 공개된 특정강력범죄 피의자는 26명, 성폭력처벌법 피의자는 6명이다. 10년간 총 32명으로 연평균 3.2명꼴이다. 2010~2020년 검거된 살인사건(기수) 피의자만 3830명으로 연 평균 348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극히 일부다.

이조차 수사단계를 거쳐 재판에 넘겨지면서 가해자의 신분이 피의자에서 피고인으로 전환됐다면 적용되지 않는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도 마찬가지다. 지난 12일 부산고법 형사2-1부(최환 부장판사)는 강간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가해자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상공개 및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그러나 A씨가 이에 불복해 상고할 수도 있는 만큼, 신상공개는 유죄가 확정된 다음에야 가능하다.

■일본 등 주요국은 공개 문턱 낮아

A씨의 2심 선고 당일,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공개 확대 방안 추진을 지시했다.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A씨는 피의자 신분이었을 당시 중상해 혐의가 적용돼 신상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도 "관련 내용을 확인했다"며 "추후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게 되면 공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법무부가 해외 사례 등을 폭넓게 검토한 뒤 현행 신상공개 기준을 완화해 적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등 해외에선 법률상 피의자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크게 제한하지 않는 곳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경찰국은 성인 피의자가 체포된 경우 이름 나이, 성별, 인종, 거주지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경찰국도 체포한 자의 이름과 주소, 직장, 나이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 경찰은 지침상 범죄 예방이나 공공의 이익과 관계될 경우를 제외하고 피의자의 이름을 공개하거나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선 안 된다.
다만 기소될 경우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이름을 밝혀야 한다. 일본은 실명 보도가 원칙적으로 허용돼 강력범들의 얼굴과 실명이 언론에 그대로 보도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는 피의자의 머그샷을 비롯한 신상정보가 언론을 통해 종종 보도된다"며 "국가가 나서 여성 대상 강력범죄 등 신상공개 대상 범위를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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