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과외 중개 앱을 통해 부산에서 또래 여성에게 접근해 흉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23)이 자폐적 성향을 가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1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이하 '그알')에서는 ‘밀실 안의 살인자 정유정은 누구인가?’는 부제로 정유정 사건에 대해 다뤄졌다. 정유정은 지난달 27일 혈흔이 묻은 캐리어를 숲속에 버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택시 기사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알’ 제작진이 단독 확보한 CCTV 영상을 보면 정유정은 범행 직전 긴 머리를 잘랐고, 사건 당일 미리 구매한 중고 교복을 입고 중학생인 척 위장했다. 중학교 재학 시절 정유정은 조용했지만, 친구들과도 곧 잘 어울려 놀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한 이후부터는 친구들과 대화 없이 독특한 행동을 반복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등학교 동창 A씨는 “커튼을 옆으로 자기한테 둘러서 독서실처럼 만들어놨었다”며 “‘유정아 너 또 그러고 있니?’ 이러면 그냥 ‘어’ 이러고서는 ‘유정아, 뭐 먹어?’ 하면 ‘그냥 과자’라며 조용히 먹었다”고 떠올렸다.
동창 B씨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러면 대화도 해보고 싶고 그럴 만도 한데 얘기를 해도 대답도 안 하고 아무 표정도 없고 그러니까 놔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유사한 범행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유정이 동급생들과도 거리를 두고 자폐적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참혹한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5년의 세월 동안 정유정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분석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고등학교 친구들의 증언을 보면 정유정이 가지고 있는 그 성격의 맨 바탕에는 자폐적인 성향이 엿보인다”며 “모든 범행 과정에 슬리퍼만 신고 있다. 자폐 성향의 사람들이 신체 감각에 되게 예민하다. 타이트한 옷이나 이런 것들을 많이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타인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독특한 말투와 걸음걸이가 있다. 이런 거 역시도 자폐적인 특성을 조금 고려할 수 있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유정이 상대적으로 자폐 성향이 적은 아스퍼거 증후군(고기능성 자폐)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과외 선생님들한테 이야기하는 글로 쓰는 장면에서는 어색하지 않다”며 “본인이 원하는 것도 정확하게 물어보고 있었고 둘러댈 줄도 안다. 직접 대면했을 때 사회성이 더 떨어진다면 자폐 특성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이어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선천적인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사고를 치지는 않는다”면서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 트라우마에 노출되고 두 번째 충격이 오면 터져 나오게 된다”고 밝혔다.
표창원 범죄심리분석가 역시 “정유정은 섣불리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가 왜 이런 괴물이 됐는지 그 과정 중에 우리 사회가 발견하거나 막을 수 있는 여지는 없었는지 주목해야 한다”며 “섣불리 단순하게 규정지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편 지난 14일 부산지검에 따르면 검찰은 11일자로 만료 예정이던 정유정의 구속 기한을 오는 21일까지로 한 차례 더 연장하고 보강 수사를 하고 있다.
지난 2일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강력범죄수사부 소속 검사 3명으로 전담수사팀을 꾸려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씨의 정확한 범행동기를 밝히기 위해 대검찰청 심리분석관을 투입해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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