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낸셜뉴스] 식품업계에 정부 발 ‘가격인하 압박’ 공포가 퍼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18일 국제 밀 가격 인하를 근거로 라면업계에 대해 경고를 한 만큼 빵, 과자, 국수 등 밀가루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기업들도 눈치싸움에 돌입했다.
지난 18일 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라면 생산 판매기업이 국제 밀 가격 상승을 이유로) 지난해 9∼10월 가격을 많이 올렸는데, 지금 밀 가격이 1년 전 대비 약 50% 내린 만큼 다시 적정하게 가격을 내렸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이어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 문제는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며 라면업계에 가격 인하를 사실상 압박했다.
1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6월 밀가루의 주원료인 국제 소맥(SRW) 가격은 1t당 231달러로 내림세가 뚜렷하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통보한 것은 없지만 인하 여지가 있는지 다각도로 검토”했다며 “국제 소맥 가격이 떨어져도 국내 소맥분 가격에 바로 반영되지 않는데다 밀을 뺀 농산물과 물류비, 인건비 등이 오른 상황에서 밀가격 한가지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가격 인하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추 부총리와 정부는 지난해부터 식품·외식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해왔다. 또 지난 2월에는 서울 서초구 식품산업협회에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물가안정을 위한 ’식품업계와의 간담회’도 열었다.
제과·제빵업계는 추 부총리가 밀 가격 인하를 근거로 삼은 만큼 다음 ‘타깃’이 빵, 과자가 될까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제과·제빵업계 관계자는 “식품산업은 영업이익율이 1~2%에 불과하다”며 “기업간 충성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하고 유통기업의 자체상표(PB) 상품에 대한 가격 방어 차원에서 최소한만 인상했는데 정부가 압박을 하니 산업 특성을 모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제과·제빵업계 관계자는 “식품업계 경력이 20년에 달하지만 부총리가 특정 품목(라면)을 콕 집어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광경을 본 적 없다”며 “금리는 정부가 올려놓고 (금리 인상의 여파로 인한) 물가는 기업이 잡으라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치킨, 피자 등 외식업계도 정부가 물가 안정을 국정 목표로 삼은 상황에서 언제든 타깃이 될 수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치킨업계 관계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닭고기 가격은 내려가지 않았다”며 “식품뿐만 아니라 가스비, 전기세, 인건비 등 인상으로 가맹점주들은 오히여 가격을 올려달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농심·삼양식품·오뚜기 등 라면 3사는 지난해 주요 제품 가격을 잇따라 인상했다. 지난해 9월 농심이 신라면 등 대표 상품의 출고가를 평균 11.3% 올렸다. 이어 오뚜기가 11.0%, 삼양식품은 9.7% 인상했다. 이날 오전 정부의 라면값 인하 압박 영향으로 주요 라면 제조기업의 주가는 급락했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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