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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올 여름 ‘슈퍼엘니뇨’에 따른 역대급 폭염 가능성에다 중국발 전력난까지 겹치면서 국내 산업계가 공급망 악몽이 재연될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LG전자 등 국내 핵심 기업들의 주요 생산기지가 자리한 미국, 중국, 베트남 일부 지역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블랙아웃(전력공급 차단) 가능성이 있어 공장 가동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미국·중국·베트남, 폭염에 전력난 임박
22일 산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제조기업들이 진출한 해외 거점 지역에서 폭염으로 인한 전력난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까지 직접적인 문제는 없지만 현지 정부와 원활한 소통을 통해 공장가동 등에 차질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아시아 생산거점인 베트남은 최근 사상 최고인 44도를 기록하는 등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폭염으로 인한 전력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박닌성과 타이응웬성 등에 전 세계 스마트폰 생산량의 50% 가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LG전자는 하이퐁시에서 생활가전을 생산하고 있다. 최주호 베트남 복합단지장(부사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현지법인 관계자들은 이달 12일 베트남 국영 북부전력공사(EVNNPC)를 방문해 전력 사용 지침, 전력 공급망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름철마다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든 중국의 올해 전력상황도 좋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미·중 반도체 패권경쟁, 궈차오(애국주의 소비)에 이어 전력난까지 덮치며 국내 기업들의 중국 사업이 3중고에 시달릴 전망이다. 중국의 주요 수력발전 지역인 쓰촨성과 윈난성이 가뭄으로 전력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고, 수도 베이징은 지난 5월 중순 기온이 35도를 넘기자 17년 만에 때이른 폭염경보를 발령했다.
앞서 '중국의 IT 수도'인 쓰촨성 현지 당국은 지난해 폭염과 가뭄으로 전력난에 시달리자 공장 폐쇄 명령을 10여일간 내린 바 있다. 쓰촨성 성도인 청두에는 인텔, 글로벌파운드리,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반도체 기업 제조공장이 있다. 인근 충칭시에는 SK하이닉스의 패키징 공장이 가동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공장은 정상 가동됐지만 전력난으로 사업장에서 에어컨 사용에 제한이 있어 애를 먹었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략도 폭염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는 최근 한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 수일째 이어지면서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삼성전자의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이 위치한 오스틴시가 텍사스주에 위치해 있다. 현지 언론은 텍사스주의 전력 예비율이 지난 16일 기준 적정 전력 예비율인 13.7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3%까지 하락할 것으로 추산되면서 공장 가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전했다.
기후변화 관리도 제조 경쟁력
전문가들은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산업군에 기후변화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로 떠오른만큼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진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이미 중국 남부지역에서는 뚜렷한 폭염의 전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중국 반도체 산업은 전력난을 이미 한 차례 경험했다. 최근 전력 수급에 비상인 쓰촨성 일대 반도체 공장 가동 상황에 대해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오재호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명예교수는 "제조업 중심인 우리나라는 과거 해외진출에 있어서 인건비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서 "지금은 RE10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등 이슈로 장기적으로는 청정 에너지 공급 등이 생산기지 건설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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