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열병(熱病)을 잘 치료하는 의원이 있었다. 많은 의원들은 열병을 두려워하고 치료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 의원만은 열병을 치료하는데 도가 터서 따르는 제자도 많았다.
의원은 제자들에게 “열병은 음양의 원리로 치료하는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기운은 서로를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열(熱)은 한(寒)으로 치료하고, 한(寒)은 열(熱)로 치료하는 것이다. 그래서 몸에 열이 나면 시원하게 식혀야 하는데 기운이 찬 약재를 처방하는 것이고, 몸이 냉하다면 몸을 덥혀야 하는데 그래서 기운이 뜨거운 약재를 처방하는 것이다. 뜨거운 것으로 차가움을 치료하는 것이 바로 이열치한(以熱治寒)이고, 차가운 것으로 뜨거움을 치료하는 것이 바로 이한치열(以寒治熱)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을 이용해서 치료하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은 덧붙여서 “의서에서는 열(熱)을 한(寒)으로, 한(寒)을 열(熱)로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 치료법이기 때문에 이것을 정치(正治)라고 한다. 그리고 정치는 서로 반대되는 기운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역치(逆治)라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어려운 설명이기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날 한 사내가 약방을 찾았다. 그 사내는 “며칠 전부터 열이 나면서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합니다.”라고 했다.
피부가 후끈거리고 진땀도 있었다. 의원이 진맥을 수차례 해 보더니 인삼, 부자, 육계 등을 처방했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스승님은 분명 열은 차가운 약재로 치료해야 한다고 했으면서 뜨거운 기운의 약재들을 처방했기 때문이다.
제자 중 한 명은 “아니 스승님, 지금 처방을 잘못하신 것 아닙니까? 이 사내는 지금 열이 난다고 하는데, 뜨거운 약재를 처방하시면 아궁이에 땔감을 더 집어넣는 것과 같으니 열이 더 날 것이 아닙니까? 속히 처방을 거둬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의원은 이 말을 듣고 나서도 태연하게 “이래서 열병을 치료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 사내가 호소하는 열은 가짜 열이다. 곁에 열감이 나타나지만 실제로 속은 냉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를 진한가열(眞寒假熱)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사내에게 뜨거운 약재를 처방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방금 전에 따지며 들었던 제자에게 “이 사내에게 진맥(診脈)과 복진(腹診)을 해 보거라.”라고 했다. 제자는 사내의 진맥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제자는 “사내가 열증(熱症)이 있다면 맥이 빠를 터인데, 맥이 느리고 깊습니다.” 이런 맥은 냉증이나 허증에 나타난다. 이어서 복진을 해 보더니 “팔다리와 몸통의 피부는 열감이 있는데, 이상하게 배꼽부위만은 냉감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스승은 “이것이 바로 진한가열(眞寒假熱)이다. 사내는 열감을 호소하지만 열은 가짜이고, 냉한 속이 진짜이다.”라고 했다.
스승은 “이럴 때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을 해야 한다. 겉으로 열증이 있는데, 실제 속은 냉한 경우는 뜨거운 약을 처방해야 열이 내려간다. 열병(熱病) 환자 중 열에 아홉은 이한치열(以寒治熱)해야 하지만, 열에 한두명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속이 냉함이 진짜인데 겉이 뜨겁다고 해서 찬약을 쓰면 속은 더 허냉(虛冷)해지고 오히려 열이 더 날 것이다. 의서에서는 이것을 일반적인 방법과 반대로 치료한다고 해서 반치(反治)라고 했고, 열(熱)을 따라서 열약(熱藥)을 쓴다고 해서 종치(從治)라고도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제자들은 스승의 열병 치료법에 감탄을 했다. 열을 열로 치료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승의 이열치열법은 온 마을에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누구나 아는 이한치열과는 달리 이열치열은 놀라운 치료법으로 인식이 되었다.
그러나 부작용이 속출했다. 동네 사람들은 열이나 나면 모두들 이열치열을 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어느 대감 집 하인이 감기에 걸려 열이 났다. 그러나 그 대감은 하인을 방에 들어가게 하더니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도록 했다. 하인이 몸이 뜨거워서 힘들다고 했더니 이열치열을 해서 땀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불을 땐 방안에서 인삼과 함께 닭을 고아서 먹었다. 하인의 열은 더 심해지고 피부에 열꽃까지 폈다. 그러나 열이 나도 감히 말도 못했다.
의원들도 문제였다. 의원들조차도 진한(眞寒)과 가열(假熱), 진열(眞熱)과 가한(假寒)을 진맥을 통해서 구분해야 하는데, 진맥도 하지 않고 열이 날 때 찬약을 한번 써 보고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가열(假熱)인가 보다 하면서, 인삼, 부자 등의 뜨거운 약재를 마구 처방해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이열치열이 마치 유행처럼 열풍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이열치열을 함부로 시행해서는 안되는 치료법임을 깨달았다. 사실 어느 때는 이한치열을 하고, 어느 때는 이열치열을 해야 하는 지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느 날 제자 중 한명이 “스승님, 이열치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한치열을 해야 하는 진열(眞熱)과 이열치열을 해야 하는 가열(假熱)을 어떻게 구분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스승은 “진열(眞熱)은 열이 나면서 속도 열한 것이니 그 증상 역시 얼굴이 붉고 답답하며, 변비가 있고 소변은 붉고 뻑뻑하며, 숨이 차고 목이 붓고 아프고, 맥은 긴장되고 빠르게 나타난다. 반대로 밖은 열이 있더라도 속은 냉하면 가열(假熱)이니, 이 때는 마땅히 따뜻하게 보해야 하고 찬약은 적합하지 않다. 이때 맥은 느리고 약하고 기운이 없다. 마치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한 것처럼 허증이 나타나고 찬 것을 먹기를 싫어한다.”라고 했다. 제자들은 열심히 받아 적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스승은 이어서 “진열(眞熱)을 치료하는 이한치열은 실증(實證)을 치료하는 것이고, 가열(假熱)을 이열치열은 허증(虛症)을 치료하는 것이다. 만약 열이 날 때 시원한 냉수를 벌꺽벌꺽 마시고 편해 한다면 진짜 열이고, 냉수를 입안에서만 돌리고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면 가짜 열이다. 가짜 열이 날때는 오히려 따뜻한 물을 마시고자 한다. 그래서 옛 말에 감온(甘溫)한 약으로 대열(大熱)을 제거한다고 했는데 바로 가까 열을 말한 것이다.”라고 했다.
제자 중 한명이 “이한치열과 이열치열을 잘못 하면 어떤 병폐가 뒤따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나 스승은 “우매한 의원들은 열이 있다면 바로 찬약을 쓰는데, 이때 가열(假熱)이라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이열치열을 해야 한다. 반대로 진열(眞熱)임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이열치열한다고 열한 약을 잘못 써도 죽는 것은 매 한가지다.”라고 주의를 줬다.
오진으로 잘못 치료하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동네 사람들도 이열치열을 조심했다. 열이 난다고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치료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이열치열을 해야 하는 경우에라도 원래 열이 많은 체질들은 뜨거운 약을 사용하는 것을 조심했다. 이열치열은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치료법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몸이 허해서 속이 허냉한 경우가 많아서 이열치열을 함에도 그나마 적용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잘 먹고 몸이 실해지고 화가 많아진 요즘에는 이열치열은 잘못하면 자칫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열치열은 고수(高手)의 난치법이다.
* 제목의 ○○은 ‘고수(高手)’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경악전서> ○ 然, 用溫之法, 但察其外雖熱而內無熱者, 便是假熱, 宜溫, 不宜凉也; 病雖熱而元氣虛者, 亦是假熱, 宜溫, 不宜凉也. 眞熱者, 誰不得而知之? 惟假熱爲難辨耳. 病假熱者, 非用甘溫, 熱必不退, 矧眞寒者, 又在不言可知. 大都, 實證多眞熱, 虛證多假熱, 故治實者, 多宜用凉, 治虛者, 多宜用溫. 眞假不識, 誤人不淺矣. (한편 용약하는 법을 단지 살펴서 밖은 열하더라도 속이 열이 없는 경우는 가짜 열이니 마땅히 따뜻하게 해야기 차갑게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고, 병은 열하더라도 원기가 허한 경우 역시 가짜 열이니 마땅히 따뜻하게 해야지 차갑게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진짜 열은 모두가 알 수 있지만, 가짜 열만은 변별이 어렵다. 병에 가짜 열인 경우는 감온한 약을 쓰지 않으면 열이 절대 물러가지 않으니, 하물며 진짜 한의 경우라 말할 것도 없다. 대체로 실증은 진짜 열이 많고 허증은 가짜 열이 많기 때문에 실을 치료하는 경우는 대부분 차갑게 써야 마땅하고, 허를 치료하는 경우는 대부분 따뜻하게 써야 마땅하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여 알지 못하면 사람을 심하게 그르친다.)
○ 治法有逆從, 以寒熱有假眞也. 此, 內經之旨也, 經曰: "逆者正治, 從者反治". 夫以寒治熱, 以熱治寒, 此正治也, 正卽逆也; 以熱治熱, 以寒治寒, 此反治也, 反卽從也. (치법에는 '역'과 '종'이 있으니, 한열에 있는 진짜와 가짜 때문이다. 이는 내경의 요지인데, 내경에서는 ‘역은 정치이고 종은 반치다’라고 하였다. 한으로 열을 치하고 열로 한을 치하는 것이 정치인데 정은 바로 역이다. 열로 열을 치하고 한으로 한을 치하는 것은 반치인데, 반은 바로 종이다.)
○ 又經曰: "微者逆之, 甚者從之", 又曰: "逆者正治, 從者反治". 此謂以寒治熱, 以熱治寒, 逆其病者, 謂之'正治'; 以寒治寒, 以熱治熱, 從其病者, 謂之'反治'. 如以熱治寒而寒拒熱, 則反佐以寒而入之; 以寒治熱而熱拒寒, 則反佐以熱而入之, 是皆反佐之義, 亦不得不然而然也. (또한 냐경에서는 ‘가벼운 것은 역치하고 심한 것은 종치한다.’ ‘역자는 정치이고 종자는 반치다. ’라고 하였다. 이는 이한치열, 이열치한으로 그 병을 거스르는 경우는 정치라는 것이고, 이한치한, 이열치열로 그 병을 따르는 경우는 반치라는 말이다. 가령 이열치한했는데, 한이 열을 밀어내면 반대로 도와 찬약을 넣어주고, 이한치열했는데, 열이 한을 밀어내면 반대로 도와 뜨거운 약을 넣어주는데, 이것은 반대로 도와준다는 뜻으로 역시 부득이 그럴만해서 그런 것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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