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최근 우리·현대카드가 신청한 '미성년 자녀를 위한 가족 신용카드 서비스' 혁신금융서비스 신규 지정
소비자 편의성 향상·미성년자 금융훈련 등 순기능도 존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청소년 구매 행태에 부정적 영향 미친다는 우려도
소비자 편의성 향상·미성년자 금융훈련 등 순기능도 존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청소년 구매 행태에 부정적 영향 미친다는 우려도
[파이낸셜뉴스] 최근 금융위원회가 미성년 신용카드 사용을 승인하는 혁신금융서비스를 추가 지정했다. 이에 부모의 신용을 토대로 카드를 발급받은 미성년자도 카드 사용이 가능해져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편의성이 향상되고, 장기적으로는 신용카드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지난 1999년에서 2000년에 걸쳐 진행된 신용카드 규제 폐지 정책이 카드사 연체율 상승과 부도 위기를 유발했던 '카드 대란'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최근 우리카드와 현대카드가 신청한 '미성년 자녀를 위한 가족 신용카드 서비스' 등 금융서비스 20건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신규 지정했다. 현행 법에서는 성년 19세가 아니거나 12~17세 사이의 청소년들은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지만 해당 서비스가 시행됨으로써 미성년자는 부모가 신용카드를 발급받았을 때, 부모의 신용을 바탕으로 가족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됐다. 앞서 신한카드와 삼성카드는 이미 ‘청소년 신용카드’에 대한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받은 바 있다.
미성년자 신용카드 서비스에 우리·현대카드까지 합세하게 되자 카드업계 관계자들은 '고객들의 편의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낙관했다. 이전에는 청소년들이 체크카드밖에 사용할 수 없어 부모의 신용카드를 오남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청소년들의 신용카드 사용을 허가하게 되면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체크카드를 사용할 때 계좌에 잔액이 없으면 결제가 안 되는 등 번거로운 상황들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신용카드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도 카드사들에게 이점이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가 단기 순이익을 올릴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청소년 고객들이 어릴 때부터 신용카드를 사용함으로써 신용카드의 매력을 느끼고, 성인이 된 후에 신용카드의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진다는 차원에서는 카드사들이 잠재고객을 관리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우려점도 존재한다. 부모의 신용을 기반으로 미성년자들이 신용카드를 발급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대부분 소득이 없는 학생 신분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카드사들의 건전성 관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러 누리꾼들은 "금융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허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무분별한 카드 소비로 또 한번 카드대란이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등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카드대란은 지난 1997년 말 발생한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경기 활성화 측면에서 신용카드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각종 규제를 완화하자 카드사들이 부도 위기에 직면한 사태를 일컫는다. 당시 카드사 신용판매 취급 비중 규제 폐지,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용한도 폐지 등이 시행됐다. 또한 카드사 ‘길거리 회원모집’이 허용되며 소득이 확인되지 않은 계층을 대상으로도 신용카드 발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2002년부터 카드사들의 연체율이 급상승했으며, 당시 9개 전업 신용카드사 중 대출서비스를 하지 않던 비씨카드를 제외한 8개 신용카드사는 모두 큰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성년 자녀를 위한 가족 신용카드 서비스가 '제2의 카드대란'으로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이며, 되레 미성년자들의 합리적인 금융 생활을 위한 훈련과 자기효능감 상승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바라봤다.
서지용 한국신용카드학회장(상명대 경제학부 교수)은 "(미성년 자녀를 위한 가족 신용카드 서비스를 통해) 청소년들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신용카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합리적 금융 생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미성년자가 가족카드로 사용 가능한 업종은 교통·문구·서점·편의점·학원 등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업종으로 제한되며, 한도는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50만원이다.
서 학회장은 "가족카드의 경우 가족 한도 범위 내에서만 쓸 수 있는 데다가 미성년자들이 제대로 된 카드 사용 훈련을 조기에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또한 "인간 사회가 결국 신용 사회인 만큼, 미성년자들에게 금융교육 측면에서 (신용카드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은 중요하다"며 "오히려 성인이 된 후 (금융 지식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카드를 잘못 썼다가 사용 금액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가족카드의 경우 사용 업종과 한도가 정해져 있어 과소비를 제한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카드 사용법을 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위원에 따르면, 미성년자들이 '엄마 카드'나 '아빠 카드' 대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카드를 사용할 경우 자기효능감도 키울 수 있으며 카드사들의 잠재고객 관리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미성년자 카드 사용으로 인해 카드사들의 건전성 관리에 '빨간 불'이 켜질 수 있다는 우려에도 선을 그었다.
서 학회장은 "소비자들이 우리 신용카드 역사가 짧은 것에 비해 합리적인 소비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며 "그간 카드사들도 카드대란, 돌발 금융위기를 겪으며 위험 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설령 미성년자의 신용카드 사용을 허가하는 것이 카드사 연체율에 영향을 준다고 해도 카드사들이 충분히 위험을 제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위원 역시 "가족 카드는 한 사람의 신용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카드를 발급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주어진 한도보다 많이 쓸 수는 없어 카드대란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반면 미성년자에게 가족카드를 발급해 주는 서비스가 청소년들의 구매습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상미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결국 해당 서비스를 통해) 금융지식이 없는 학생들이 신용카드를 통해 부채를 얻는 것"이라며 "청소년들이 현금이 없는 상황에서 구매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구매를 하는 행위가 습관이 될 경우 (해당 서비스가) 장기적으로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채 교수에 따르면, 부채를 본인이 감당하는 방법과 그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교육을 한 후 이를 토대로 가족카드를 발급할 경우 청소년들의 소비습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주식 투자에 관한 교육을 제외하면 금융교육이 전무한 상태다.
가족카드가 부모의 신용을 토대로 발급된다는 점도 문제 요소다. 채 교수는 "자식에게 용돈을 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부모가 가족카드를 발급받는 상황이 생길 여지가 있다"면서 "카드 대금을 갚는 것이 청소년 본인이 아닌 부모라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가족카드는 미성년자가 부모의 신용을 토대로 발급받는 개념의 상품이라 부모가 관련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그러나 해당 카드를 활용한 소비행태 자체는 청소년의 금융 데이터로 남아 성인이 되었을 때 하나의 평가 자료로 활용될 여지도 있다.
이에 채 교수는 "청소년 때 신용이 나빠질 경우 대출을 받거나 집을 살 때 제약이 될 수도 있다"며 "카드사들이 이런 데이터들을 암호화하거나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열람을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청소년들이 각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특정 업종 혜택을 이용하려고 굳이 필요 없는 카드를 발급해 달라고 부모에게 요청할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신용카드 시장이 어려운 상황인 점은 알고 있지만, 청소년을 상대로 무분별하게 카드를 남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제언했다. 이어 "전문가들의 의견을 많이 청취한 후 각종 문제에 대한 보완책을 정립하는 등 (서비스를) 정교하게 디자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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