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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식아동과 7년 장인숙 교육복지사 "아침 한끼가 아이들 표정을 바꿔줘요"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29 12:49

수정 2023.06.29 13:23

월드비전 '아침머꼬' 사업에 7년간 헌신한 장인숙 교육복지사 / 월드비전 제공
월드비전 '아침머꼬' 사업에 7년간 헌신한 장인숙 교육복지사 / 월드비전 제공

"'아침머꼬'는 단순히 아침밥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위기상황도 더 빠르게 캐치할 수 있게 해준다."

경남 진주 봉원초등학교에서 결식아동의 아침식사를 책임지는 장인숙 교육복지사(60·사진)는 지난 21일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침머꼬'를 통해 아이들과 관계가 형성 되면서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 자연스레 도움이 필요한 사례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 복지사는 지난 2016년 월드비전 결식아동 지원 사업인 '아침머꼬' 시범사업부터 월드비전과 함께 했으며, 봉원초 등 여러 학교에서 총 7년간 한번도 쉬지 않고 '아침머꼬' 실무자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해왔다. 다음은 30일 정년 퇴직하는 장 교육복지사와의 일문일답.

ㅡ'아침머꼬'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교육복지사 뭔지도 모르고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당시 경쟁자도 많았는데도 50살이 넘은 나이에 합격을 하고 교육 복지를 하게 됐다. 저는 생소한 일을 시작하면서 막막하기만 했는데, 마침 '아침먹꼬' 사업을 접하고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무조건 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 학교 측이 식중독 등 위험 요소가 있어 반대했다. 그래서 '아침머꼬'의 필요성을 증명하기 위해 제가 직접 학생들에게 전수 조사를 진행했고, 40% 정도가 아침을 먹지 않고 등교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한부모 가정의 학생과 조손 가정의 아이 등 10명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 당시는 복지실이 교실 반칸도 안됐고, 씽크대도 없는 상황에서 운동장 급수대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시작했다.


ㅡ원래 아이들을 좋아했나.

▲사실 저는 아이들을 지금처럼 좋아하지도 않았고, 나눠주고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근데 7년 동안 제 성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저는 완전 뼛속 싶은 '내향형'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주고, 내 돈을 내서라도 나눠주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으로 변하게 됐다. 제가 이런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ㅡ'아침머꼬'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침머꼬'를 하면서 아이들을 잘 살필 수 있고, 자연스러운 가정 방문을 통해 학부모들과 소통하게 됐는데, 이는 교육 복지 본연의 업무를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좀 더 아이들에게 해줄 건 없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등 '아침머꼬'는 저의 성향까지 변화 시켰다. 가정에서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담임 교사 보다 저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복지실이 언제나 고민을 털고 편하게 올 수 있는 사랑방이 돼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ㅡ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전 학교에 있을 때 아버지가 새벽에 일하러 나가면서 아이를 깜깜할 때 학교에 데려다 놓고 출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 아이가 1학년이라 키도 작아서 문을 열 줄도 모르고 그저 교실 문 앞에 고개 푹 숙이고 마냥 선생이 올 때까지 기다리던 아이였다. 아버지께 위험하니 조금만 늦게 출근을 하시고 학교에 조금만 늦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복지실에 와서 밥을 먹고 교실로 가도 교사나 다른 학생들이 오지 않은 상태라 제가 '요즘은 일찍 교실에 가면 뭐 하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선생님, 저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너무 감사했다.

ㅡ어떤 점이 어려웠나.

▲항상 '아침머꼬'를 하는 날은 자기 전부터 긴장을 하고 자야 한다. 아침 일찍부터 배달을 하는 업체가 없는 게 가장 어려웠다. 다행이 지금은 좋은 마음으로 배달을 해주는 곳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ㅡ7년 동안 아침 일찍 나와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끊임없이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제가 소진이 되지 않았던 게 가장 큰 것 같다. 은행 일을 하다가 퇴사하고 육아를 한 후에 교육복지사라는 일을 너무 늦게 만났는데, 아이들과 재밌게 지내는 것이 '신세계'였다. 하루하루 신이 난 게 원동력이다.

ㅡ처음엔 아이들이 아침 먹으러 오는 게 낯설어 하거나 꺼려할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나.

▲처음에는 쭈뼛하며 오다가 한두번 먹고 나면 오히려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다. 아이들이 복지실에 와서 아침을 먹고 있으면 '아침머꼬'를 안하는 아이들이 창문 밖에서 부러워하면서 쳐다보고 같이 와서 아침을 먹기도 한다. 첫 학교에서는 10명(월드비전 지원)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학교들에서는 총 20명(월드비전 10명, 학교 10명 지원) 아이 아침밥을 준비했다. 그리고 20인분 외에도 항상 씨리얼과 토스트도 같이 준비해서 지원 받는 아이들이 아니어도 아침 먹고 싶으면 언제든 오게 했다. 이제는 복지실이 '아침에 배고프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으로 생각나게 해서 낙인감 문제도 사라졌다. 가끔 아침 못먹은 교사도 오신다.

ㅡ이제 퇴직하면 아이들을 못 만날텐데,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복지실 문 앞에 붙여 놓은 것이 있는데, 노크하고 인사하는 등 예절 교육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인사 안하고 들어오면 다시 나갔다가 들어오라고 말한다. 인사는 사람과의 관계를 잘 이어 가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ㅡ후원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런 후원자 분들이 계서서 우리 사회가 참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 같다. 그 선한 영향력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흘러 좋은 어른으로 자라서 또 많은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ㅡ월드비전에 바라는 점이 있나.

▲'아침머꼬' 파트너인 월드비전에 정말 감사드린다. 신속한 지원 시스템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렵고 복잡한 절차도 쉽게 설명해주셔서 잘 진행할 수 있었다. 많은 기관에서 많은 일들을 하지만 월드비전은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신속하게 지원이 가능해서 제가 많이 도움을 받은 기관이다.
월드비전이 우리 사회 아침밥과 같은 든든한 기관이 되기를 기도하겠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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