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튼 러시아는 국가 시스템에 약점을 드러냈다. 특별군사작전이란 어정쩡한 상태에서 용병 중심의 변칙전은 고금 역사에서 많이 보았듯 반란으로 귀결되었다. 전쟁 개시 명분이었던 슬라브 민족의 단결은커녕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적 확장은 러시아 목 밑까지 차올랐다. 러시아의 위상은 2차 세계대전 때의 용맹 이미지, 대유럽 군사적 우위, 에너지 영향력으로 버텨왔는데, 비록 지난해 러시아 경제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선전했지만 러시아의 미래는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가 원하는 방식으로 끝내든 혹 다른 결말이든 날개가 있어도 추락은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진 미국은 어떤 이익을 누렸을까? 유럽연합과 나토 통제를 강화한 것은 확실한 성과다. 단, 두 개의 전쟁을 동시 수행할 의지와 역량 여부의 판단은 아직 이르나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도 기존 동맹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바이든 정부의 노련한 성취다. 특히 한국의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은 큰 결과다. 중국이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2008년, 금융위기로 부득이 중국 견제를 늦춰야 했던 미국은 이번엔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도 디커플링을 추진할 정도로 치열해졌다. 단, 디리스킹으로 전략을 수정해야 할 만큼 중국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재확인해야 했다. 대중 압박 성과는 아직 기대치를 밑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모두와 이해관계를 가진 중국은 전략적이든 경제적이든 플러스는 아니다. 냉전 초기 중국이 소련에 좌지우지되던 시대는 이제 옛날 얘기다. 작금 군사기술과 에너지 이외 러시아 경제는 중국 광둥성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순망치한'은 중·북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입술' 러시아가 어떤 식으로든 버텨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러시아가 글로벌 삼국지의 한 축을 맡아준다면 중국의 미국 상대는 상대적으로 용이해진다. 러시아가 약화되어도 미국의 동진을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바로 미국과의 결승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럼 미국이 흔든 기존 국제질서 판은 새로운 판으로 바뀔 수 있는가? 윤석열 정부는 현재 전 세계에 어벤저스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미국이 우리를 도와준 만큼 우리도 도와야 한다는 신념은 종교에 가깝다. 경제, 안보의 부분적 양보는 대의를 위한 희생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 버거워할 때 우리는 스윙국가로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유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입장인 듯하다. 바이든도 싱하이밍도 베팅 발언을 했지만, 윤 정부는 확실한 몰빵 배짱 베팅을 하고 있다. 나름 정세 파악 후 결정이라 믿고 싶다. 대박일지 본전일지 손해일지는 4년 후면 알 수 있다. 윤 외교 지지층 이외의 국민들은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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