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장마 때는 우비 입고 해요, 쉴 생각은 안 해요. 그냥 하면 되더라구요."
7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골목에서 우산을 쓰고 땀방울을 흘리던 김정현씨(26·가명)가 장마철에도 거리로 나오냐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선글라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얼굴이 땀에 절어 눈을 수십번 깜빡이고 있었다.
이날 하얀색 긴팔에 짙은 색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 김씨는 주 7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5시간 같은 자리를 지킨다고 한다. 허리 정도까지 오는 피켓은 작은 전구들로 장식돼 있었다. 손님들 눈에 더 띄기 위함이다. 하지만 체감온도가 33도까지 치솟는 더위에 전구들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길이가 남아 뒤엉킨 전구들은 작은 플라스틱 통에 넣어져 있었다. 김씨는 비가 와도 전선을 들고 다니냐는 질문에 "비가 와도 괜찮아요. 혹시 몰라서 전선을 플라스틱 통을 들고 다니니까요"라고 답했다.
김씨는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과 손님들에게 매장 위치를 안내한다. 이렇게 일을 하면 시급 1만3000원에 주급 45만원 정도를 받는다. 김씨는 몇 년 전만해도 강남역 부근에서 인형 탈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인형 탈이)가게 홍보하는데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사람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사진 찍고 인사를 하다 보면 같은 시간을 일해도 체력적으로 더 힘들고 고생이라서 요즘은 거의 다들 안 해요."
김씨처럼 한낮 명동거리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연령층은 다양했다. 다른 골목에서 마사지샵 전단을 돌리던 정모씨(47·여)는 목에 착용이 가능한 휴대용 선풍기와 수건을 두르고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정씨는 반소매에 토시를 착용하고 있었다. 햇빛을 가릴 모자도 필수로 착용한다고 했다. 정씨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돌리면 되니까 일을 쉰 적 없다"며 "시급이 1만1000원 정도인데 매일 전단 장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오히려 자유롭고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지인 소개로 약 2년 전부터 용돈벌이용으로 전단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유모씨(66)는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2시간씩 약 200장 정도의 전단지를 배부하고 있다. 장마기간에도 이렇게 일을 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말에 유씨는 "좋은 날씨만 골라서 일할 수는 없다"며 "그래도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해야 안 힘들고 재미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일본어와 영어가 필수인 전단 아르바이트도 있었다. 전단을 돌리며 아르바이트 채용도 같이 관리하고 있다는 이모씨(37)는 "이제는 중국어보다 일본어를 해야 돼요, 마사지샵 오는 사람들 거의 다 일본인이에요"라며 아르바이트생에게 가장 먼저 할 줄 아는 외국어가 무엇인지 물어본다고 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명동 등 관광지에 활기가 돌면서 길에 나와 호객 행위를 하는 이들도 덩달아 분주해진 모습이었다. 무더워지는 날씨와 장마보다 다른 가게들과의 경쟁에 더 날을 세웠다.
김씨는 "조금 있으면 오후 3시부터 노점상들이 길 중간에 나오는데 그때부터는 잘 서 있지도 못한다"며 "지금 이렇게 길 중간에 서 있는 것도 옆 가게들의 양해를 구하고 조율해서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한편 구청에서 허락받지 않은 채 전단을 돌리다가 고발당하면 장당 5만원까지 범칙금을 낼 수 있다. 또 가게 앞 입간판은 사람들이 지나가다 다칠 위험이 있어 지난 6월부터 구청이 단속에 나섰다. 이에 대해 김씨는 자신과 같은 '이동식 간판'이 다른 어떤 홍보 수단보다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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