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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탈원전정책 '비핵가원'…'블랙아웃 공포'만 키웠다 [현장르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09 18:43

수정 2023.07.09 18:43

해외도 탈원전 후유증, 대만 궈성원전 홍보관
2025년까지 원전비중 0% 목표
해마다 정전사태로 전력난 겪어
산업생산 차질에 비핵가원 반대
지난 2일 방문한 대만 전력공사의 궈성원전 입구. 궈성원전 1호기는 2017년, 2호기는 2023년에 각각 가동이 중단됐다. 사진=이유범 기자
지난 2일 방문한 대만 전력공사의 궈성원전 입구. 궈성원전 1호기는 2017년, 2호기는 2023년에 각각 가동이 중단됐다. 사진=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타이베이·신베이(대만)=이유범 기자】 인천공항에서 2시간가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대만의 타이베이시. 여기서 다시 북동쪽으로 차로 두 시간가량을 가면 나오는 신베이시 완리 지역에서는 현재 가동이 중단된 궈성원전과 원자력홍보관을 확인할 수 있다. 가동을 멈춘 원전과 원자력홍보관이 공존하는 미묘한 곳에서 대만 사람들의 원전에 대한 인식을 들을 수 있었다. 또 우리나라가 곧 마주할 사용후핵연료 저장 문제와 원전의 계속운전 이슈를 대만 역시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향후 원전정책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 닮은 비핵가원과 탈원전

지난 2일 방문한 궈성원전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대만 입장에서 원전을 해외 언론에 보여주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도 원전은 '가'급 보안등급을 부여받을 만큼 엄격히 통제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인근에 위치한 원자력홍보관은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만은 현재 원자력 관련 이슈가 뜨거운 나라다. 지난 2016년 출범한 민주진보당(민진당) 차이잉원 정권은 2025년까지 원자력을 통한 전력생산 비중 0%를 달성하는'비핵가원(非核家園)'을 추진 중이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과 유사한 정책이다.

대만은 한때 6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했지만 현재 2기만 가동 중이다. 40년의 운전기간이 만료된 진산 1·2호기는 각각 2018년과 2019년 폐쇄됐다. 정부 정책에 따라 계속운전 신청을 하지 못했다. 탈원전 정책에 계속운전 신청을 못해 지난 4월 가동이 중단된 우리나라의 고리 2호기와 비슷하다.

궈성 1호기는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조의 포화로 2021년 7월 1일 가동을 정지했고, 같은 해 12월 운전기한 만료로 영구폐쇄됐다. 궈성 2호기 역시 올해 3월 운전기한 만료로 가동이 중단됐다. 대만 내 최신형 원전인 마안산 1호기와 2호기는 정부 계획에 따라 2024년과 2025년에 영구정지가 예정돼 있다.

가동을 시작도 못한 원전도 존재한다. 건설 여부를 두고 수십년간 갈등을 빚은 룽먼 1호기는 지난 2014년 완공했으나 가동조차 못했고, 2호기 건설은 지연되고 있다. 2021년 건설재개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52.8%가 반대하며 부결됐기 때문이다. 이 역시 탈원전 정책으로 가동을 하지 못했던 신한울 1·2호기와 상황이 비슷하다. 전력 생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룽먼원전에는 매년 13억대만달러(약 475억원)의 유지비만 들어가고 있다.

■원전 가동중지에 매년 전력수급 비상

'비핵가원' 정책 이후 대만은 매년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우선 2017년 8월 15일 타오위안시에 있는 대만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LNG) 발전소인 타단발전소의 천연가스 공급장치가 고장나면서 발전소 가동이 중지됐다.

이 사건으로 대만 전 지역의 64%가 정전이 되었으며 828만가구에 전력공급이 끊겨 2500만명이 폭염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도 2021년 5월 13일 가오슝시에 있는 싱다발전소의 설비고장으로 남부 지역인 가오슝시와 타이난시 전역에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고, 다른 중·북부 지역에서는 순환정전을 실시했다. 나흘 뒤인 17일에도 대만 전역 66만가구에 50분간 전력공급이 중단됐다. 2022년 3월 3일에도 대만 남부지역 정전과 중·북부지역에서 순환정전이 이뤄졌다.

사고는 원전이 아닌 다른 발전소에서 발생했지만 원전이 정상적으로 가동됐다면 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핵가원' 정책 이전까지 대만의 전력예비율 목표치는 15%였다. 하지만 비핵가원을 위해 10% 미만의 전력예비율을 유지한 탓에 발전소 사고 시 전력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수급이 나빠지면 기업의 생산공정에서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대만이 '호국신산(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고 부르는 TSMC다.

모리스 창 TSMC 회장은 대만의 정전사태 이후 "TSMC는 1분의 정전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산업 특성상 정전이 발생하면 재가동까지 최소 3~4일 걸리는 데다 피해금액도 수천억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타이베이 야경. 대만은 2017년에 한 차례, 2021년에 두 차례, 2022년 한 차례에 걸쳐 순환정전이 발생한 바 있다. 사진=이유범 기자
대만 타이베이 야경. 대만은 2017년에 한 차례, 2021년에 두 차례, 2022년 한 차례에 걸쳐 순환정전이 발생한 바 있다. 사진=이유범 기자
■'비핵가원' 반대여론 높아져

이처럼 연이은 정전사태 영향에 '비핵가원'에 대한 반대여론도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룽먼원전 가동에 대한 주민투표에서는 반대여론이 높았지만 그보다 상위법인 '탈핵가원' 자체에 대한 국민투표에서는 찬성보다 반대여론이 높았다.

과거 대만의 전기산업법 제95조 제1항에는 '대만은 2025년에 비핵가원을 실현할 것이다'라는 조항이 존재했고, 2018년 이를 유지할지에 대한 국민투표를 했다. 당시 투표 결과 60%, 약 600만명의 국민이 원전 가동에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이로 인해 2019년 해당 법조항은 삭제됐다. 법 조항은 삭제됐지만 차이잉원 정부는 여전히 탈핵가원 정책을 추진 중이다.

궈성원전 인근의 홍보관에서 관람객이 원전 가동 방식과 안전성에 대한 홍보내용을 보고 있다. 사진=이유범 기자
궈성원전 인근의 홍보관에서 관람객이 원전 가동 방식과 안전성에 대한 홍보내용을 보고 있다. 사진=이유범 기자
원전 홍보관에서 만난 A씨(68)는 "시대는 끊임없이 발전해야 해서 전기가 없으면 안 된다. 화석연료나 천연가스로는 문제를 해결 못할 것"이라며 "석유나 천연가스에 비해서 탄소배출량이 적기 때문에 안전관리만 잘한다면 전혀 문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대만의 비핵가원 정책이 폐기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2024년 치러지는 대만 총통선거 결과에 따라서다. 야당인 중국국민당과 대만민중당은 원전을 재가동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만 에너지학계 석학인 예쭝광 대만 칭화대 교수는 "한국은 대만처럼 천연자원이 굉장히 부족하기 때문에 에너지 안전요구에 부합하는 원전을 사용해야 전력부족을 걱정하지 않게 된다"며 "한국은 원전기술이 매우 발전해 있다는 점에서 원전을 가동하는 현재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leeyb@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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