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돕는 한국인 목사, NYT 통해 폭로
탈북 여성들의 참담한 실상 담은 문자메시지 공개
"방금 감시 카메라 코드를 뽑았어요. 아직도 밖에서 택시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파란색 택시가 시동을 켠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택시를 두 번 갈아탄 뒤 목적지로 가는 다른 차를 탈 거예요."
지난 1월 중국에서 일하던 북한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A씨가 탈북자들을 돕는 한국인 목사와 나눈 문자메시지의 일부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서울발 기사에서 천기원 목사가 A씨를 비롯해 중국에서 사이버 성매매를 강요당하던 탈북 여성들을 돕는 과정에 주고받은 수백 건의 문자메시지와 오디오 파일 등을 공개했다.
천 목사는 NYT 인터뷰를 통해 중국에 있는 탈북자를 돕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졌다"라며 2건의 사례를 언급했다.
지난 2019년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 목적으로 중국 동북 지방에 파견된 A씨는 처음에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지만, 보안 카메라와 경비원들의 감시 속에 노예 같은 삶을 살면서 회의를 느꼈다.
그러던 그는 2021년 한 웹사이트에서 천 목사의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된 뒤 텔레그램을 통해 "내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연락한다"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월 4000~5000달러 수입 못올리면 '명령 불복종' 구타
A씨는 상부에서 정한 월 4000∼5000달러의 수입을 올리지 못해 지난해 명령 불복종으로 구타당했다며 멍든 얼굴을 찍은 영상을 천 목사에게 보냈다.
A씨는 자신의 삶을 "새장 속의 새"에 비유하면서 "그들은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다"라며 "설령 (탈북 과정에서) 죽을지라도 단 하루라도 자유인으로 살아보고 싶다"라고 토로했다.
지난 2018년 북중 국경을 넘었던 여성 B씨도 천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B씨에 따르면 앞서 탈북을 위해 고용한 브로커가 "한국으로 가려면 3개월만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라며 B씨를 중국 바이산의 한 공안 간부와 결혼한 북한 여성에게 팔아넘겼다.
이 여성은 B씨를 아파트에 가두고 웹캠으로 남성 고객들을 위해 성적 행위를 보여주라고 강요했다.
지난 1월 천 목사와 접촉한 B씨는 자신과 2명의 다른 탈북 여성이 곧 다른 인신매매 일당에 팔려 갈 예정이라며 긴급 탈출을 부탁했다.
천 목사는 수천달러였던 브로커 수수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수만달러로 뛰었지만, A씨와 B씨 등의 탈출을 위한 자금을 가까스로 마련해 태국에 있는 한 브로커를 고용했다고 밝혔다.
이 브로커가 중국 내 다른 브로커들과 팀을 이뤄 이들을 칭다오의 안전 가옥으로 빼낸 뒤, 차로 라오스로 이동,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이들은 팬데믹 이후 잦아진 당국의 신분 검사, 정교해진 안면 인식 기술과 감시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단계별로 여러 번 차를 갈아타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탈북' 더 어려워져.. 탈출 시도하다 붙잡혀 감옥행
그러나 먼저 빼낸 A씨를 태우고 B씨 등을 데리러 가는 길에 브로커와 A씨 모두 체포됐다. 탈출 과정에 사용한 자동차가 감시카메라에 찍혀 공안 당국에 신원이 노출된 것이다.
천 목사는 즉시 다른 브로커를 고용해 B씨 등 3명의 여성을 칭다오의 안전 가옥에 데려왔으나, 며칠 뒤 이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던 북한 여성의 남편인 공안 간부가 들이닥쳐 이들을 도로 잡아갔다.
천 목사는 "새로 고용한 브로커 중 한 명이 포주 남편에게서 돈을 받고 탈북 여성 3명을 도로 팔아넘긴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했다.
현재 A씨는 중국의 감옥에서 북한 송환을 기다리고 있으며, B씨 등 여성 3명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천 목사는 NYT에 "23년간 북한 사람들을 도왔지만, 이처럼 슬픔과 무력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라고 한탄했다.
한편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는 탈북자 수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만 해도 1047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63명으로 급감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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