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조미료가 개발된 것은 1908년이었다. 도쿄대 교수 이케다 기쿠나가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여보, 이 국물이 도대체 무슨 국물인데 이렇게 맛이 있소?"라고 물었다. 부인은 다시마 국물이라고 대답했다. 이케다는 맛을 내는 성분이 '글루탐산나트륨'(MSG)임을 확인하고 '아지노모도'(味の素·아지노모토)라는 이름을 붙여 이듬해 상품으로 만들어 냈다. 일제강점기에 아지노모도는 일본은 물론 한국 시장까지 점령해 이케다는 돈방석에 앉았다.
광복 후 아지노모도가 물러간 뒤 국산 조미료 개발에 나선 사람은 사업가 임대홍(1920~2016)이었다. 1955년 봄 일본으로 건너간 임대홍은 오사카에 자리를 잡고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조미료 제조법을 습득해 돌아왔다. 드디어 1956년 1월 31일. 임대홍은 동아화성공업㈜을 설립, 부산 대신동의 150평 남짓한 작은 공장에서 조미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국산 1호 조미료 '미원(味元)'이었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대상그룹 창업주 임대홍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제품 연구에만 몰두하고 집에서도 실험을 하는 실험광이었다. 일본 출장 때는 도쿄 변두리의 7평짜리 아파트를 쓰고, 기성 양복만 입고 설렁탕을 먹는 구두쇠였다. 은둔한 미국의 대부호에 견주어 '한국의 하워드 휴즈'로 불리기도 했다.
미원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다. 위조품과 '일미' '미락' '미량' 등 아류 제품들이 나돌았다. 미원은 1965년 서울 방학동 공장을 가동했고, 2년 후에는 생산량이 100t을 넘어서 시장점유율 선두를 빼앗기지 않았다. 미원은 조미료의 대명사가 되어 우리 식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신문에서 조리법을 소개할 때도 조미료라는 이름 대신 미원을 그대로 썼다. 삼성그룹의 제일제당은 '미풍'을 내놓고 미원에 도전했지만 아성을 허물지 못했다(미원과 미풍의 경쟁은 다음 편). 제일제당은 '다시다'로 대반격에 나서 미원과 호각지세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원은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을 기록하며 탄탄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고, 동남아 등 해외에서 더 인기가 높다.
CJ제일제당은 그때의 미풍을 지금도 생산·판매하고 있다. 한편 아지노모토는 CJ제일제당을 상대로 ′감칠맛 소송′을 내 지난 2월 CJ가 40억엔(약 360억원)을 지불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동아일보 1957년 11월 3일자에 실린 최초의 미원 광고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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