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이초 교문을 기점으로 학교 담장 좌우로 전국 각지의 동료 교사들이 보낸 추모 조화들이 빼곡히 들어차고 있다. 인도까지 줄줄이 이어진 전국 교사들이 보낸 대형 근조화환과 크고 작은 각종 조화들은 1000여개를 넘겼다. 눈에 띄는 2~3단 근조화환만 500여개가 넘었다. 추모 조화들이 계속 도착하면서 일부는 학교 인근 옆 상가 건물로도 들어서고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한 A씨(23)는 지난해 3월 임용된 신규 교사였다. 아직 여교사의 사인에 대한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내에서 사건이 벌어졌고, 최근 해당 교사가 학내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전국 동료교사들이 분노하고 있다. 서이초 담장에는 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각종 갑질을 호소하는 동료교사들의 수많은 게시물도 내걸렸다.
악성민원 '괴물 학부모' 질타 목소리 커져
'학부모 악성민원으로 인한 타살' '학부모 갑질' '괴물 학부모' 등을 질타하는 크고 작은 게시물들이 서이초 주변에 내걸렸다.
극단 선택을 한 A씨가 유서를 남기지 않으면서 정확한 사인은 아직 미스터리다. A씨가 고통을 호소하는 일기장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아직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동료 교사들은 전날 서이초 교내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교장을 면담하려는 교사들과 학교 측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미 수천명의 교사들이 서이초 현장을 찾아 조문했다.
서이초측은 무리한 억측을 삼가달라고 요청했다. 서이초 교장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고인의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 업무가 아닌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였다. 해당 학급에서는 올해 학교폭력신고 사안이 없었으며 학교폭력과 관련해 해당 교사가 교육지원청을 방문한 일도 없었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교사단체와 유족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보였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전날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울신규교사 사망사건 추모 및 사실확인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극단선택을 한 교사 A씨의 외삼촌 B씨도 참여했다.
B씨는 기자들을 만나 A씨의 극단적 선택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의 공간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 공적인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그렇다면 학교에서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른 문제로 치부해버리면 근본적인 학교 현장의 문제해결도 안되고, 고인이 원치 않는다고 본다. 학교에서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했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시교육청 앞에는 '서이초 진상규명 촉구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근조 조화도 30개가 배송되기도 했다.
고위직 정치인·학부모 연루설 등 유언비어 난무
교원단체들은 A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진상조사와 함께 악성 민원에 대한 교원보호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작금의 상황을 한 교사의 참담한 교권침해를 넘어 전체 공교육의 붕괴로 엄중히 받아들인다"며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무고성 악성 민원이 더 이상 발 붙 일 수 없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력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전날 오후 서이초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하고 "교권은 너무 위축돼 있고 나머지는 너무 과잉보호되고 있다"며 교권침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매우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인터넷에서는 학생들 다툼에서 비롯한 이른바 '학부모 갑질'이 A씨 사망의 원인이 됐다거나 특정 정치인이 연루됐다는 등 의혹 제기와 소문이 계속 퍼지고 있다. 이 국회의원은 이 자신과 가족은 A씨 사망과 무관하다고 공식 해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파문이 확산하자 경찰은 서이초 교사 전원을 상대로 극단적 선택의 배경을 탐문하기로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사가 학교 내에서 생을 마감한 것을 두고 심각한 교권 침해가 원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교육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