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여중생을 강간한 중3 남자아이
검사실에서 혐의 부인한 까닭은...
검사실에서 혐의 부인한 까닭은...
중3이 강간을 했다고?
검사 시절 처리한 사건이다. 중학교 3학년 남자 아이(이하 ‘남중생’)가 중학교 3학년 여자 아이(이하 ‘여중생’)를 강간했다는 사건을 배당받았다. 자그마치 강간이다. 성인이 강간했다면, 구속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어린 학생이라는 점을 참작해서, 남중생을 불구속 수사했다. 하지만, 필자(당시 검사)는 미성년자라고 하여도, 구속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반성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기록에 의하면, 남중생은 마지못해 범행을 시인한다고 진술할 뿐이었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것이 왜 잘못인지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피해를 준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사죄하면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해 여중생과 합의도 하지 않았다. 여중생의 부모는 귀한 딸이 강간당했다며 남중생의 엄벌을 탄원했다. 피눈물이 났을 것이다.
필자는 남중생과 그 부모님을 검사실로 소환해서 면담했다. 구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남중생은 말로는 잘못했다고 하지만, 눈빛과 몸짓은 당당했다.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무언가 좀 이상했다. 필자는 구속되고 징역을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형벌인지 몰라서, 철이 없어서, 이렇게 뻔뻔한 태도를 취한다고 판단했다. 구속과 징역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남중생의 범죄는 구속되고 실형을 살아야할 중죄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필자가 남중생을 구속해서 실형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간 남중생의 눈빛이 흔들렸다. 남중생 부모님은 오열하기 직전이었다.
"저 강간하지 않았어요"
“검사님, 사실 저 강간하지 않았어요.” 남중생이 폭탄발언을 했다. 필자는 분노했다. 반성도 안하더니, 이제는 잘못한 것도 없다고? 아무리 중학생이라고 해도, 이제는 정말로 구속과 실형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자비는 없다. 법의 엄중함을 보여주어야 할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이상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진짜로 강간하지 않아서, 이런 태도를 보였던 걸까?” 일단은, 진실을 규명해야 했다.
필자는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물었다. “그럼, 경찰에서는 왜 강간했다고 자백했습니까?”, “피해자가 강간당했다고 허위 고소했다는 것입니까?” 남중생이 대답했다. “검사님, 저희 서로 좋아해요. 서로 좋아서 스킨십 하다가 성관계까지 한 거예요. 그랬다가, 여자 친구가 자기 아빠에게 성관계한 것을 걸리니까, 강간당했다고 거짓말한 거예요. 저는 여자 친구를 보호해주려고, 여자 친구 거짓말이 사실이라고 거짓말한 거예요.”
"아빠에게 혼날까봐..."
필자의 목소리는 더 낮게 깔리고, 어투는 극히 사무적인 경어체로 바뀌었다. “강간이 아니라,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겁니까?”, “증거는 있습니까?” 남중생이 말했다. “어제도 여자 친구가 저에게 전화하고 문자했고, 오늘도 전화했고 문자했어요. 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구요.” 필자는 남중생의 통화 기록과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남중생 말이 사실이었다. 여중생은 남중생에게 사과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있었다. 남중생은 그런 여중생을 달래주고 있었다. 그후, 필자는 여중생 및 그 부모님을 검사실로 불러서, 남중생 및 그 부모님과 대면하도록 하였다. 필자가 조용히 타이르면서 이야기를 하자, 여중생이 펑펑 울면서 자기가 아빠에게 혼날까봐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허무하고, 황당했다. 철부지들이 자기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여중생은 무고죄를 저질렀고, 남중생은 이에 동조하여 강간범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강간하면 구속하고 △남을 구속시킬 정도로 무고해도 구속하는 것이 검찰과 법원의 실무이다. 하지만, 부모님께 혼날까봐 이런 짓을 저지른 철부지 중학생들을 구속할 수는 없었다. 필자는 엄히 훈계했다. 부모님들께서도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면서, 검사에게 자식들의 선처를 부탁하셨다. 필자는 여중생과 남중생으로부터 장문의 반성문을 제출받은 후, 강간은 무혐의로, 강간 무고는 불입건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아이들 중에 이런 철부지들이 있다. 그리고, 중학생들도 서로 사귀며 성관계하는 시대가 왔다. 부모로서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아이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더 가깝게 다가서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철부지들이 무탈하고 바르게 자라기를 응원한다.
[필자 소개]
김우석 변호사는 청와대 파견, 정부 합동 반부패단 총괄국장, 서울중앙지검, 지청장 등을 거친 매서운 검사였다. 검사실에 사람이 들어오면, 구속할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주 따뜻하고 인자한 변호사다. 매일같이 선처받을 방법을 고민한다고 한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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