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 둘러싸인 담장, 끝없는 '포스트잇'
애도 위해 학교 찾는 추모객 행렬 이어져
애도 위해 학교 찾는 추모객 행렬 이어져
[파이낸셜뉴스]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24세의 새내기 교사를 떠나보낸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많은 이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분향소를 마련한 뒤 매일 500~700명의 추모객이 이 곳을 찾고 있다고 서이초 분향소 관계자는 25일 밝혔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 추모객들은 하나둘 국화꽃을 들고 교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전국의 교사들이 보내온 화환과 애도 포스트잇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추모객도 여럿 보였다.
교문 앞 포스트잇 문구에 눈물 훔치는 추모객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교사 A씨는 1998년생의 앳된 여성으로, 지난해 3월 이 학교에서 1학년 담임교사로 처음 교편을 잡았다.
1학년 학급은 유아기에서 아동기로 막 넘어온 아이들을 담당하는 학급으로, 초등학교 내에서 가장 주의가 필요한 학급이다.
선생으로서 첫 걸음마를 강도 높은 학급에서 보낸 A씨는 1년의 경험을 뒷받침으로, 올해도 똑같은 교단에 서게 됐다.
"원없이 웃으며 즐거웠던 1년" 학부모에 편지 썼던 선생님이었는데..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A씨의 근심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 21일 서울교사노동조합(노조)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A씨는 2022학년도 학기가 끝날 무렵인 지난 2월 10일 담당 학급 학부모 전체에게 감사함을 담은 편지를 보낸 바 있다. 그 내용에는 "2022년은 저에게 참 선물 같은 해였다", "너무나 가슴 벅차고, 행복했던 1년이었다", "담임교사로서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등 A씨의 깊은 마음이 적혔다.
특히 "원 없이 웃으며 즐거웠던 순간, 속상하고 아쉬웠던 순간들 모두가 아이들의 삶에 거름이 되어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존재가 되도록 도울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X반 친구들 모두 함께 한 공간에 모두 모이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서로를 기억하고, 좋은 추억을 가득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1학년 X반의 담임교사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등의 내용에서 첫 교사 생활을 지내는 것에 대해 조금의 어려움을 느끼는 한편, 교사로서 뿌듯함을 느끼는 대목도 볼 수 있었다.
5개월 만에.. "모든게 버겁다" 무너져 버린 선생님
그러나, A씨의 이런 마음은 약 5개월 만인 7월 부식된 철골처럼 무너져 버렸다.
노조가 이어 공개한 A씨의 이달 3일 일기장에는 "업무 폭탄", "모든 게 다 버겁다", "숨이 막혔다"라는 등 깊은 고충을 앓고 있는 A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A씨는 최근 근황을 묻는 동료 교사에게 "작년보다 10배 더 힘들다"라고 하는 등 푸념을 털어놓은 것으로도 전해졌다.
A씨는 고충을 앓게 된 원인으로는 과한 업무 강도와 학생 문제 등이 거론된다.
A씨의 학급에서는 이른바 '연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한 학생이 다른 학생 이마를 연필로 그은 사건을 두고, 학부모가 A씨의 휴대전화에 수십통 통화를 걸고 교무실을 찾아와 "교사 자격이 없다"등의 발언을 내뱉은 일이다. 또 A씨는 출근할 때마다 '선생님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학생의 환청이 들린다고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A씨는 학급의 교육을 위해 마련된 교내 교보재 준비실에서 이달 18일 끝내 숨을 거뒀다.
우린 모두 존중에 메말랐었다.. 최소한의 양심이 추모객 이끌어
한 교사의 사망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메말라 버린 사회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찾는 행동으로 풀이된다.
현재 교사는 조기 교육, 입시학원 등 사교육 열풍으로 인해 학생·학부모에게서 뒷편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거기다 학령인구 감소로, 교사 경쟁 또한 전보다 심화된 상황이다. 또 예전 두발 문제, 과한 체벌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예전보다는 달갑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에 대한 존중심 또한 후퇴하고 있다. 임금과 스승과 부모의 은혜는 같다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은 이제 없어진 말처럼, 선생에게서 보모 역할을 기대하는 학부모들도 여럿 나타난다.
교내 건물에 붙여진 한 포스트잇에는 "누군가 죽어야만 (교직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또 다른 포스트잇에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는 나라를 보고 싶다"라는 한 글귀가 적혔다.
교사에 대한 인식 변화는 A씨의 사망으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아가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helpfire@fnnews.com 임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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