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만 귀환' 고 최임락 일병 동생 최용씨, 편지 낭독
"목숨 바치신 우리나라, 이젠 잘사는 자유 대한민국 됐네요"
서울공항서 6.25 국군전사자 유해봉환식 열려
尹대통령, 유해 도착 즉시 유족들과 함께 맞아
거수경례로 예우, 최고의 군 예식으로 맞이
"목숨 바치신 우리나라, 이젠 잘사는 자유 대한민국 됐네요"
서울공항서 6.25 국군전사자 유해봉환식 열려
尹대통령, 유해 도착 즉시 유족들과 함께 맞아
거수경례로 예우, 최고의 군 예식으로 맞이
[파이낸셜뉴스] "임락이 형님. 가슴이 벅찹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돌아오셔서 고맙습니다."
26일 밤,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6.25 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7위 중 유일하게 신원이 확인된 고(故) 최임락 일병의 막냇동생 최용씨(79세)는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최씨는 "모질게 고생만 하시다 나라를 구한다고 군대에 들어가셨죠"라면서 "목숨 바쳐 주신 우리나라가 이제는 등 따시고, 배부르게 잘사는 자유 대한민국이 되었네요"라고 읽었다.
최씨의 아들이자 고 최임락 일병의 조카 최호종 해군 상사가 큰아버지를 하와이에서부터 직접 모셔온 가운데, 최씨는 "지금 형님은 해군에 보낸 제 아들의 품 안에 계시는데, 편안하신가요. 형님"이라면서 "이제 나라 걱정은 마시고, 편히 편히 쉬시이소. 저도 형님을 찾아주신 대한민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공군 특별수송기가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14시간 이상의 비행을 거쳐 이날 밤 8시10분께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7위를 봉환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도착 시간에 맞춰 유족들과 특별수송기 앞에 도열해 예포 21발과 함께 유해에 대한 거수경례로 최고의 예우를 다해 맞이했다.
이번 행사는 호국영웅들을 공군 F-35A 호위·국빈급 예포발사·기상영접 등 최고의 군 예식으로 예우해 맞이하면서 국군전사자와 유가족 중심으로 집중됐다.
특별수송기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자, 공군 F-35A 편대의 호위가 시작됐고 최 일병의 고향인 울산지역 상공을 거치는 비행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날 봉환된 7위의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6위의 유해는 기록 분석과 정밀감식, DNA검사 등으로 신원을 확인해 나갈 예정이다.
신원이 확인된 고 최 일병은 1931년 울산에서 태어나, 1950년 8월 만 19세의 나이로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이후 카투사로 미 7사단에 배치돼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고 1950년 10월 함경남도 이원항에 상륙 후 이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같은해 12월12일 장렬히 전사했다.
고 최 일병의 형인 고 최상락 하사 또한 1949년 2월 육군에 입대, 국군 3사단 23연대에 배속돼 6.25전쟁에 참전 중 영덕-포항전투(1950.8.1.~9.14.)에서 북한군 5사단에 맞서 싸우다가 1950년 8월14일 산화했다.
동생 최씨의 편지 낭독 뒤 윤 대통령은 고 최 일병에게 참전기장을 수여했다. 흰 장갑 착용한 윤 대통령은 참전기장을 최 일병 유해함 위에 올려둔 뒤 고개 숙여 인사했다.
윤 대통령은 유가족들과 함께 전사자 유해 운구 이동 행렬을 따라갔다. 유해 운구 차량에 전사자 유해와 유족들이 탑승한 뒤, 운구 차량이 공항 뒤편으로 이동할 때까지 윤 대통령은 경례 자세를 유지하며 예를 갖췄다.
이날 유해봉환 행사에 앞서 고 최 일병 유족을 만난 윤 대통령은 위로와 함께 "73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고 최임락 일병을 조국의 품으로 다시 모시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정부 출범 후 첫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봉환 행사를 주관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그동안 국군전사자 유해 인수는 6차례, 대통령이 주관하는 행사는 총 4차례에 그쳤으나 윤 대통령은 임기 2년차에 유해봉환 행사를 주관하면서 조국을 위해 희상한 분들에 대한 예우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평가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