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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나랏빚 위기에 정치권 싸움 반복" 12년전 이유와 같았다 [美 신용등급 12년만에 강등]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02 18:26

수정 2023.08.02 18:26

피치, 신용등급 강등 배경은
'거버넌스 악화' 첫번째로 꼽아
2011년 S&P도 하향원인 지목
재정적자·이자비용 증가도 원인
【파이낸셜뉴스 실리콘밸리=홍창기 특파원】 세계 3대 신용평가사 피치가 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배경은 미국 정치권의 부채한도 대치 상황 반복과 미국의 채무부담 증가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1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했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역시 미국 국가부채 상한 증액에 대한 정치권 협상 난항 등을 강등 배경으로 지목했었다.

피치는 미국 정부 정책결정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떨어져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가 약화되면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추가로 하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실제로 낮아졌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나 해외 국가는 아무도 없지만 이번 일로 미국 바이든 정부가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만은 확실하다는 진단이다.

■정치권 싸움·국가부채가 원인

피치는 이날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향 배경으로 가장 먼저 '거버넌스 악화'를 들었다.
미국이 국가부도 위험에 처했는데 미국 정치권이 서로 '네 탓'을 하면서 국가의 위험을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피치는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하락시킨 주된 이유로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를 꼽았다. 미국 연방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가 적어졌음에도 각종 재정지출이 늘어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국방 관련 지출을 늘렸다. 또 올해 하반기부터 인프라 투자 관련 각종 재정지출 확대가 예정되어 있다.

피치는 미국 정부의 이자비용 증가도 심각하게 봤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빚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려 이자상환 부담이 이중으로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피치는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의 재정적자 비중이 지난 2022년 3.7%에서 올해 6.3%, 오는 2024년 6.6%, 오는 2025년 6.9%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피치는 미국 인구고령화와 의료비 증가에 따른 재정악화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또 다른 이유라고 짚었다.

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미국은 2021년 현재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6.8%로 초고령사회에 근접하고 있다. 피치는 이런 이유로 오는 2033년까지 메디케어(고령자 의료보험)와 사회보장 지출이 GDP의 1.5%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피치는 "향후 10년간 금리상승과 부채 증가로 이자상환 부담이 늘어나고 미국의 인구고령화와 이로 인한 의료비 상승으로 재정개혁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정개혁은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할 수 있는 요인이다. 피치는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고 미국 정치권의 거버넌스 악화를 막는다면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백악관 강력 반발…"영향은 제한적"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은 재선을 염두에 둔 조 바이든 대통령(사진)의 백악관도 뒤집어지게 했다. 백악관은 피치의 이번 결정을 강하게 반대했다.

백악관은 피치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미국 국채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유동자산이라는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아주 강력하게 미국 경제의 회복세를 이끌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피치의 신용등급 진단 자체를 부정했다. 피치가 무디스나 S&P처럼 면밀히 신용등급을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무디스가 10년 전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지만 미국 경제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버드대의 제이슨 퍼먼 교수는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피치의 이번 강등은 경제적 영향보다는 정치적 이슈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피치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웬디 에델버그는 "피치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강등시켰지만 미국 국가신용등급은 여전히 높다"면서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공화당의 무모한 벼랑 끝 전술이 미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며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이유를 공화당에 뒤집어씌웠다.
미국 정치권 일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의 마야 맥기니스 회장은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은 미국에 경각심을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국가의 재정과 정치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theveryfirst@fnnews.com 홍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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