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익명성 뒤에 숨은 범죄자 영웅심리?..인터넷 밈(meme) 된 '살인 예고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09 06:00

수정 2023.08.09 06:00

서울 신림동, 분당 서현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연쇄 발생
묻지마 길거리 살인..시민들 일상의 공포에 "늘 불안"
상당수 미성년자, 온라인에 '살인예고글" 올려 공포 조장
전문가 "청소년·플랫폼 관련대책 마련해야"

전국적으로 '살인 예고'가 속출하고 있는 7일 대구 중구에서 한 시민이 '살인 예고'를 정리해 알려주는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예고 글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적으로 '살인 예고'가 속출하고 있는 7일 대구 중구에서 한 시민이 '살인 예고'를 정리해 알려주는 웹사이트에서 실시간 예고 글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에 이어 경기 분당 서현역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온라인 상에서도 이를 따라하는 듯한 '살인 예고' 글이 범람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중 온라인에 '살인예고' 글을 썼다가 붙잡힌 피의자가 중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로 확인돼 아무리 단순 호기심 차원이라도 해도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때 별도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붙잡힌 이들 중 일부가 "장난이었다"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운데 단순 장난이라하더라도 그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공포감을 조장하는 행위를 적극 처벌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실제 형사 처벌까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흉악 범죄를 예고하는 '장난글'이 온라인 밈화(Meme:모방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확산하는 놀이 현상)가 되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온라인 익숙한 청소년층, 살인예고글 온라인 밈化

8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살인예고 글 관련 혐의로 검거된 인원은 67명에 달한다. 전날까지 검거된 피의자의 52.3%인 34명이 10대 청소년이다. 이 중에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촉법소년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고글은 디시인사이드 등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살인을 예고하고, 흉기 사진 등과 함께 게시되고 있다. 시민들은 불안을 호소하며 약속을 취소하기도 하고 언제든 흉악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일상 생활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살인 예고 알람 사이트'가 등장하자 일 5만명이 접속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예고글 작성자들이 '단순한 장난'이라며 죄책감 없이 글을 작성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간 흉악범죄와 그것에 대한 예고를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고, 온라인 상에서 과시 또는 우월감을 목적으로 타인에게 직간접적으로 위해가 될 수 있는 글을 아무런 제재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4일 '왕십리역 살인 예고글'을 올려 경찰에 잡힌 20대와 '모란역 살인 예고글'을 올리고 붙잡힌 20대는 모두 "장난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묻지마 칼부림' 사건 발생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에서 무장한 경찰특공대 대원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묻지마 칼부림' 사건 발생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7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에서 무장한 경찰특공대 대원들이 순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익명성 뒤에 숨은 과시 욕망"..일상 공포 조장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익명성 뒤에 숨어 영웅심리와 호기심을 바탕으로 인터넷 문화에서 우위에 서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준 테러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 새로운 사회문제가 등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대부분 작성자가 1020 세대인 점은 지금 발생하는 학교공간에서 발생하는 학교 폭력과 사이버불링 왕따, 교권 침해 등 문제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며 "잘못된 행위에 대해 불이익이 없으니 청소년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인식도 없고, 강력한 형사 처벌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니 교육 현장에서도 인식 교육 등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 "작성자 중 반 이상이 10대라고 하지만, 나머지 반은 왜곡된 욕망을 가진 성인이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되고 적극 대응을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지난 7일 관내 1407개 초·중·고등학교 학생과 교사, 학부모 83만명에게 긴급 스쿨벨 3호를 발령했고 학교전담경찰관(SPO)이 학생들의 훈육을 강화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 생활안전기능에서 각 시도청에 요구해 청소년 모방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 당국과 학교, 지역 맘카페 등을 통해 범죄 예비 예고 글을 올리는 행위가 중하게 처벌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 범죄관련 모방 글, 규제강화-책임성 부여 시급

인터넷 공간에서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범죄 행위'에 온라인 플랫폼의 자체 규제를 활성화하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먼저 이런 예비글들을 당국에서 추적해서 적극 처벌하겠다는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홍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며 "지금껏 없던 현상에 대해 정부가 나서 선악을 정확히 구분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유 교수는 "커뮤니티 등 플랫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에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앞으로 이런 현상(예고글 작성)은 계속 반복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마다 '표현의 자유'나 '즉시적 제제가 어렵다'는 변명으로 온라인 플랫폼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규제를 거부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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